[편집자 주] 과거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의 부동산 공약은 표심을 좌우하는 촉매제가 되곤 했습니다. 6·3 조기 대선이 약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경닷컴은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동산 공약을 톺아보고 향후 시장 전망을 전문가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대장 아파트 '래미안 원베일리' 사진=한경DB
서울 서초구 반포동 대장 아파트 '래미안 원베일리' 사진=한경DB
서울 서초구 반포동 대장 아파트인 '래미안 원베일리'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3일 70억원에 손바뀜했다. 지난해 11월 54억9000만원에 팔린 후 약 4개월 만에 15억1000만원이 뛰었다. 전용 84㎡ 기준 전국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아파트다. 3.3㎡당 2억원이 넘는다.

대전, 대구, 광주, 부산, 울산 등 5대 광역시 핵심지에 있는 전용 84㎡ 1가구씩을 다 합쳐도 래미안 원베일리를 사지 못한다. 전용 84㎡ 기준으로 대구 수성구 범어동 '힐스테이트범어'(15억6500만원), 부산 수영구 남천동 '남천자이'(15억6000만원), 대전 서구 둔산동 '크로바'(10억8500만원), 울산 남구 신정동 '라엘에스'(10억3400만원), 광주 서구 쌍촌동 '상무센트럴자이'(9억4500만원)의 가격을 합치면 61억8000만원에 그친다.

이 같은 초양극화 현상 심화는 차기 대통령의 숙제가 될 전망이다.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과열돼 '똘똘한 괴물'이 됐다. 서울에 집을 가진 집주인들은 현재 사는 지역보다 더 나은 지역으로, 지방 집주인들은 미래가 없는 지방보다는 서울 핵심지에 내 집 마련에 나선 탓이다.

전문가들은 초양극화 현상은 결국 계층 분리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차기 정부에서 이를 최우선으로 두고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지방을 살리기 위한 지역 균형 발전, 다주택자 규제 완화 등을 대안으로 거론했다.

서울 집값 고공행진…지방은 침체일로

서울 시내 아파트 전경. 사진=한경DB
서울 시내 아파트 전경. 사진=한경DB
20일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13억2965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6월 평균 매매 가격이 12억원을 넘어선 후 10개월 만에 13억원을 돌파했다. 13억원을 넘어선 것은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8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차기 대통령 숙제…"'괴물' 된 '똘똘한 한 채'" [부동산 공약 톺아보니 下]
같은 기간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울산, 인천 등 6개 광역시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3억6721만원으로 집계됐다. 6개 광역시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2022년 12월 3억9735만원을 기록해 3억9000만원대로 내려온 이후 2023년 1월 3억8000만원대, 3월 3억7000만원대, 5월 3억6000만원대로 내려온 이후 24개월 연속 3억6000만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평균 매매 가격으로만 보면 서울 아파트 한 가구로 6개 광역시 아파트 3가구 이상을 살 수 있다.

양극화 현상은 서울 내에서도 심화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 5분위 배율은 6.0을 기록했다. 상위 20% 아파트 한 가구로 하위 20% 아파트 6가구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전국 아파트 5분위 배율은 지난달 11.5배로 높아졌는데 올해 1월(11.1배)보다 상승했다. 전국적으로 집값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정보현 NH투자증권 Tax센터 부동산 수석연구원은 "'똘똘한 한 채'는 점점 과열 양상에 접어들면서 '똘똘한 괴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주택자 규제에 탄생한 '똘똘한 괴물'

'똘똘한 한 채'가 자리 잡게 된 시기는 문재인 전 정부 때다. 문 정부는 다주택자에 대해 취득세, 보유세, 양도소득세 등 집을 살 때, 가지고 있을 때, 팔 때 등 모든 과정에서 세금을 중과했다. 다주택자는 대출받거나 청약을 받을 수도 없었다.

취득세율은 4%에 불과했지만, 최고 12%까지 치솟았다. 4주택 이상에만 적용됐던 중과 세율이다. 종부세는 3주택 이상이나 조정지역 2주택자의 경우 최고 6%로 상향됐다. 기본공제 6억원이 적용되지 않는 법인은 세 부담이 더 커졌다. 양도세는 조정지역 내 주택을 양도할 때 2주택자의 경우 20%포인트, 3주택자 이상은 30%를 중과하도록 했다. 1년 미만으로 가지고 있었던 집은 양도 차익의 70%를, 2년 미만은 60%를 세금으로 내도록 했다.
서울에 있는 한 부동산에 세금 관련 안내문이 게재돼 있다. 사진=한경DB
서울에 있는 한 부동산에 세금 관련 안내문이 게재돼 있다. 사진=한경DB
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시장이 자연스럽게 '1가구 1주택'으로 재편되고 시장 역시 안정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가격은 정부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다주택자는 자신이 보유한 부동산 자산 중 수익성이 낮은 지방 물건이나 서울 외곽 주택을 모두 처분하고 소위 '잘 나가는' 서울 핵심지 아파트로 갈아탔다. '똘똘한 한 채'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강남 3구(강남·송파·서초구),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핵심지 집값은 단기간에 수억원씩 뛰었지만, 서울 외곽, 비서울은 수요가 줄어들면서 가격이 내렸다. 양극화가 극심해진 것이다.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은 "문재인 정부 당시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굉장히 강력하게 적용되면서 이들이 움직일 수 있는 길이 '똘똘한 한 채' 밖엔 없었다"며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규제가 계속되는 한 집값 양극화는 피해 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전문가 경고 "양극화,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오른쪽부터)·개혁신당 이준석·민주노동당 권영국·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가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 프리즘센터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1차 후보자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오른쪽부터)·개혁신당 이준석·민주노동당 권영국·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가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 프리즘센터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1차 후보자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차기 대통령의 부동산 시장 숙제거리로 점점 더 심해지는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을 꼽는다. 지역별 자산 양극화 현상으로 우리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김진유 경기대 교수는 "서울과 비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 내에서도 같은 면적대의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수배가 차이 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며 "양극화가 심화하면 집값으로 계층이 분리되고 심지어는 거주의 자유도 보장되지 않는 등 사회 문제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선 서울 시장에 쏠려 있는 눈을 지방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지방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지방에 쌓인 미분양 물량을 해소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비용 부담을 낮췄다는 점을 홍보하고 있는 한 아파트의 모델하우스 모습.  사진=연합뉴스
비용 부담을 낮췄다는 점을 홍보하고 있는 한 아파트의 모델하우스 모습. 사진=연합뉴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8920가구였는데, 이 가운데 지방 미분양 물량은 5만2392가구로 76%를 차지했다. '악성 미분양'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도 넘친다. 해당 기간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만5117가구로 2013년 8월 이후 가장 많다. 지방에 있는 물량이 1만9179가구로 전체의 80.8%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이제는 지방에서 집을 몇 가구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결국 미분양을 해소하기 위해선 누군가 집을 사줘야 한다는 뜻이다. 지방에 한해서라도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지방 미분양 물량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주택임대사업자를 활성화해 지방 부동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보현 수석연구원은 "쉽게 얘기하면 현재는 쓸 수 있는 카드가 1장 밖에 없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똘똘한 한 채'로 수요가 몰리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주택임대사업자 제도가 활성화해 활용할 수 있는 카드의 수가 늘어나면 지방 '큰손'들은 서울에도 집을 사고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도 집을 매수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세금 등 구체적인 당근책이 있어야겠지만 충분히 지방 시장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땐 지방에 인구가 늘어날 수 있도록 지역 균형발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 원은 "최근 세종시로 행정수도를 이전한다는 내용이 다시 논의되고 있는데 이런 맥락에서 지방 곳곳에 혁신도시와 유사한 형태를 추진해 지방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는 가장만 지방으로 가서 일하는 형태가 많지만 가족이 모두 같이 옮겨갈 수 있도록 학교 등 부수적인 인프라가 함께 조성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 아파트 전경.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아파트 전경. 사진=연합뉴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 역시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방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들에 지방으로 이전하게 되면 임대료, 법인세 면제 등 인센티브를 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지방 대학 수준을 과거처럼 다시 끌어올리고 상급 병원도 지방에 둘 필요가 있다"며 "다만 이런 방안이 임기 내 실현될 수 있을진 미지수"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대선 이후 부동산 시장은 현재의 양극화 기조에서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번 선거에선 부동산 공약이 핵심 이슈에서 밀려나면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어서다. 금리 인하 기조에 들어선 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가 시행되지만 이미 2단계가 시행되고 있다는 점 등 거시 환경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도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전망이다.

고준석 연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상남경영원 교수는 "문재인 전 정부, 윤석열 전 정부 등에서 이미 부동산 이슈로 타격을 입으면서 이번 대선에선 부동산 공약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며 "금리나 대출 규제도 큰 틀에선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선 이후에도 현재 시장 분위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부동산 시장은 규제 하나로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며 "시장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선 다양한 규제와 상황들을 살펴보고 신중하게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