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스톱이냐, 고냐'…자동차 라이벌의 엇갈린 운명
일본 닛산자동차가 또다시 구조조정 계획을 내놨다. 가장 큰 과제는 설비와 인력 과잉이다. 일본과 미국의 공장 가동률은 50%대에 그쳐 손익분기점을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닛산은 생산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국내외 7개 공장 폐쇄 또는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 생산대수 기준 30%에 달하는 규모다. 이에 따라 2만 명 규모의 인력 감축에 착수한다.

15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닛산의 이번 구조조정 계획은 26년 전과 거의 같다. 1999년 프랑스 르노에서 파견된 카를로스 곤은 이른바 ‘리바이벌 플랜’을 내놨다. 53%로 떨어진 공장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엔진 및 자회사 포함 일본 5개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이때 줄인 연간 75만대는 당시 생산능력의 30%에 달했다. 인력 감축은 2만1000명.

26년 전과 차이는 두 가지다. 첫째, 르노 같은 뒷배가 없다는 점. 둘째는 강력한 결집력을 발휘한 곤 회장 같은 리더의 부재다. 2000년대 들어 예정보다 빨리 구조조정을 완료한 닛산은 즉시 성장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1990년대 부진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빠른 성장을 이어갔다.

곤 회장은 닛산·르노 연합으로 1위 도요타까지 따라잡을 수 있다고 봤다. 그런 그의 야망을 구체화한 것이 2011년 수립된 6개년 경영계획 ‘파워 88’이다. 거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 판매를 확대하는 동시에 브라질 등 신흥 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이었다. 닛산은 세계 시장 점유율 8%를 목표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
10년 전 '스톱이냐, 고냐'…자동차 라이벌의 엇갈린 운명
그 무렵 도요타가 선택한 전략은 닛산과 정반대였다. 2010년대 중반 도요타는 ‘6중고’라 불린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6중고는 리먼 쇼크, 미국 대규모 리콜, 동일본 대지진, 전력 부족, 태국 홍수, 초고환율이다. 2008년부터 계속된 역풍이 잦아들며 반격에 나설 시점에 도요타는 발걸음을 멈췄다. 신규 공장 건설 등 생산능력을 늘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결국 정체기는 3년 정도 이어졌다. 이 기간 도요타는 협력 업체 협조를 얻어 내부 개혁에 집중했다. 도요타는 연간 200만대 이상 감축했다. 생산능력의 약 20%에 달하는 규모였다. ‘큰 토요타’를 버리고 ‘강한 토요타’로 전환을 이뤄낸 시기였다는 평가다. 반면 닛산은 이 시기 내내 확장 전략을 밀어붙였다. 주력 시장인 미국에서 점유율 8%를 달성하자 목표치를 10%로 상향 조정했다.

이후 10년. 두 회사의 명암은 명확히 갈렸다. 지난해 도요타 순이익은 전년 대비 4% 감소에도 4조7650억엔에 달했다. 반면 닛산은 6708억엔 적자로 돌아섰다. 북미 판매 부진에 큰 타격을 입었다. 점유율 10%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판매 인센티브에 의존한 것이 장기적인 부담으로 작용했다.

닛산은 다시 26년 전과 같은 과제에 직면했다. 6708억엔 적자는 역대 세 번째로 큰 규모다. 사상 최대 적자는 1999년 6843억엔이었다. 부진의 원인은 곤 회장의 확대 노선이었지만, 그가 닛산을 떠난 지 이미 7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경영진이 회사를 재건하지 못한 책임은 무겁다는 지적이다.

현재는 10년 전 ‘스톱(stop)이냐, 고(go)냐’의 경영 판단으로 명암이 엇갈린 상황이지만, 앞으로 10년은 미래 모빌리티 등장 등 100년에 한 번이라는 대변혁기가 기다리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전례 없는 패러다임 전환의 시작”이라며 “서로가 겪은 어려운 시기를 교훈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