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붓의 정글로 둘러싸인 바이스로이 발리
우붓의 정글로 둘러싸인 바이스로이 발리
‘발리, 풀빌라, 리조트’. 한 단어만으로도 설렘을 주기 충분한 단어들이 세 개나 붙어있다니. 목적지가 정해진 순간부터 설렘을 감출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온몸이 움츠러드는 추위가 없는 남쪽 나라로의 휴양이라니.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풀빌라’하면 으레 연상되는 이미지였다. 허니문을 즐기는 다정한 신혼부부랄까. 혹시 커플 천국에서 나 혼자 뻘쭘한 것 아닐까?

막상 리조트에 도착하자 이런 걱정을 떠올릴 틈 없이 푹신한 침대에 파묻혔다. 꽤 먼 길을 떠나온 까닭이었다. 인도네시아 발리까지는 비행기로 7시간. ‘동남아’ 여행지 중에서 가장 장거리 비행에 속한다. 발리 덴파사르 공항에서도 차로 두 시간을 달려야 비로소 이번 여행의 목적지, 바이스로이 발리에 도착한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발리 바이브' 가득한 풀빌라 가봤더니
새삼스럽지만, 발리는 생각보다 거대하다. 총 면적 5780㎢로, 제주도와 비교하면 2.7배나 넓다. 섬이지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바다는 구경할 수없는 지역도 있다. 바이스로이 발리가 위치한 우붓이 바로 그런 지역이다.

산 언저리에 자리 잡은 우붓은 예술과 명상의 도시다. 현지 예술가들의 공예품을 모아둔 소품숍과 갤러리, 요가원들이 길에 오밀조밀 자리잡고 있다. 길목마다 이웃하고 있는 사원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을 맡은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도 우붓의 이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 로즈는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발리로 향한다. 작품이 흥행하면서 발리 우붓은 자신을 발견하고, 영감을 얻기 위한 여행지로 자리매김했다.
객실의 프라이빗 풀
객실의 프라이빗 풀
우붓의 감성을 담아

이 우붓의 감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 바이스로이 발리다. 객실에서부터 현대적인 요소와 현지의 매력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벽과 바닥은 모난 데 없이 마감된 대리석으로 반짝이다. 발리 전통 가옥의 건축법을 따른 지붕과 곳곳의 전통 문양, 원주민의 꾸밈 없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 이국적이다.

이튿날, 이국적인 새들의 지저귐으로 눈을 뜨자 비로소 이곳의 진가가 드러난다. 객실 한면을 채운 통창에 온통 초록빛이 가득하다. 리조트 맞은 편의 열대우림이 병풍처럼 펼쳐져있다. 이 풍경에 홀려 잠이 다 깨기도 전, 테라스의 프라이빗 풀로 풍덩 입수한다.
프라이빗 풀에서 즐기는 플로팅 조식
프라이빗 풀에서 즐기는 플로팅 조식
‘풍덩’이라는 의성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풀의 깊이는 1.4m. 웬만한 성인 여성 어깨까지 물이 찰랑이는 깊이다. 눈 앞의 거진 정글 아래로는 ‘왕가의 계곡’이 흐른다. 인도네시아 왕족들이 휴양을 즐기던 곳이라 붙은 이름이다. 리조트에서는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오롯이 이 협곡을 독점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슬슬 객실 밖으로 산책을 나서본다. 이곳의 객실은 오직 44개. 시설 규모에 비해 객실이 적기도 하거니와, 대부분이 프라이빗 풀을 갖춘 덕분인지 레스토랑을 제외하면 다른 손님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발리 바이브' 가득한 풀빌라 가봤더니
올데이 다이닝 레스토랑 캐스케이드
올데이 다이닝 레스토랑 캐스케이드
조식은 인도네시아 현지식과 서양식 메뉴 중마음껏 주문해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나시고렝과 수박주스를 기다리며, 오가는 이들을 살펴본다. 의외로 구성은 다양하다. 허니문 커플은 물론, 자녀를 동반한 가족, 심지어 혼자 여유로이 시간을 보내는 이도 있다. 프라이빗함이 강점이다 보니, 커플 외에도 오롯한 쉼을 누리고 싶은 이들이 찾아오는 덕분이다.

리조트를 산책하다 보면 작은 농장을 만날 수 있다. 온갖 허브와 채소, 토마토가 가득하다. 레몬 칠리, 하바네로 등 고추 종류만 해도 대여섯 가지다. 이곳에서 재배하는 채소는 실제로 손님들의 식탁에 오른다. 리조트내 모든 레스토랑이 직접 재배한 재료로 요리를 만드는 ‘팜 투 테이블’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
올데이 다이닝 레스토랑 캐스케이드. 식사하는 동안 눈 앞에 푸르른 정글이 펼쳐진다
올데이 다이닝 레스토랑 캐스케이드. 식사하는 동안 눈 앞에 푸르른 정글이 펼쳐진다
산 속의 파인다이닝
사실 바이스로이 발리의 럭셔리함을 완성하는 것은 미식이다. 올데이 레스토랑인 ‘캐스케이드’도 수준급의 요리를 선보이지만, 파인다이닝 ‘아페리티프’는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급의 요리를 선보인다. 벨기에 출신 셰프 닉 판더비켄은 인도네시아 현지의 향신료와 식재료를 활용해 놀라운 미식의 여정을 펼쳐놓는다.
아페리티프의 그림 같은 디쉬
아페리티프의 그림 같은 디쉬
코스는 ‘아방가르드’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처럼 맛뿐만 아니라 비주얼에서도 감동을 안긴다.여기에 독창적인 포인트가 되어주는 것은 칵테일이다. 레스토랑에서도 1000여 병에 달하는 와인을 보유하고 있지만, 바이스로이 발리만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칵테일 페어링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핀스트라이프의 시그니처 칵테일
핀스트라이프의 시그니처 칵테일
세계 유수의 대회를 휩쓴 믹솔로지스트 판지가 이끄는 바 ‘핀스트라이프’에서 요리마다 어울리는 창작 칵테일을 제공한다. 판단 잎, 버터플라이 플라워, 코코넛 등 동남아의 향취가 가득한 칵테일과 스테이크의 만남은 이색적이고 또 인상적이다. 1920년대 스피크이지 바에서 모티브를딴 핀스트라이프는 <위대한 개츠비>의 팬이라면 꼭 들러볼 만하다.
1920년대 스피크이지 콘셉트의 핀스트라이프 바
1920년대 스피크이지 콘셉트의 핀스트라이프 바
발리의 공기에 젖어들다
발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웰니스. 바이스로이 발리에서는 이른 아침마다 요가 클래스를 연다. 우붓에서 초빙해온 '요가 스승님'은 도사님을 연상케하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다. 선생님은 서두르지 않지만, 끊임 없이 동작을 이어간다. 요가를 정적이고 느릿한 운동이라 생각했던 지난 날을 반성하게 될 정도로 땀이 뚝뚝 떨어진다. 참가자들을 살피는 선생님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숨을 쉬라’는 것. 무리해서 동작을 따라하는 것보다, 정성들여 호흡하며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 발리 요가의 핵심이란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다 보니, 비로소 우붓의 맑은 공기를 온몸으로 맞이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침 이슬을 머금어 조금은 축축하지만, 열대우림이 뿜어내는 피톤치드가 가득한 공기. 이것을 느끼기 위해 사람들은 우붓의 요가원으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발리 바이브' 가득한 풀빌라 가봤더니
한발짝 앞선 서비스
바이스로이 발리는 2002년 같은 자리에 문을 열었다. 호주에서 날아온 마거릿 시로와트카와 가족들은 이제 거의 발리 사람이 다 됐다. 손님 입장에서 리조트 대표의 이름까지 알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이곳에서는 다르다. 리조트에서 머무는 동안 어렵지 않게 근사한 백발의 여성을 마주칠 수 있을 테니까. 그가 바로 마거릿이다.

그는 손님들과도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메뉴는 무엇인지, 부족한 것은 없는지. 이과정에서 경청한 의견은 곧 서비스에 반영된다. 그의 살가운 태도는 바이스로이 발리 직원들에게서도 일맥상통하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20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유대감이 바탕이 된다.

관광업의 의존도가 절대적인 발리 섬 전체가 코로나19로 위기에 빠졌을 때도, 170여 명이 넘는 직원을 단 한 명도 감축하지 않은 유일한 리조트가 바로 이곳이다. 서로를 직장 동료를 넘어 돈독한 가족이라 여기는 직원들의 마음은 손님에게 이어진다. 직원들과의 만남이 서비스를 넘어 보살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이유다.



김은아 한경매거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