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열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등 주요 대선 후보의 첫 토론. 주제가 경제 분야였지만 기업 투자 활성화와 관련한 공약과 토론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내수 부진을 타개하는 방안도 소상공인의 어려움과 소비 감소를 해결하기 위한 재정지출 논의만 주로 이뤄졌다.

대선후보 경제 토론…'투자 활성화'는 쏙 빠졌다
내수의 양 날개는 소비와 투자인데 희한하게도 투자는 쏙 빼놨다. 대선 주자들의 경제 지력 부족 탓인지, 토론 시간 부족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근본 문제를 도외시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난 1분기 마이너스 성장(-0.2%) 요인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는 문제다. 민간 소비와 정부 소비는 각각 0.1% 줄었는데 건설투자는 3.2%, 설비투자는 2.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올해 전망치를 포함해 최근 3년간 경제성장률이 2.0% 이하로 떨어진 것도 투자 지표(총고정자본형성 기준)의 가파른 하락세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투자는 2022년 -0.2%를 기록한 이후 이듬해 1.4%로 올라서더니 지난해 다시 -0.8%로 내려앉았다. 건설투자 침체가 큰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기업의 설비투자 증가율도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오르내리며 2%를 넘어선 적이 없다.

반면 소비 증가율(민간+정부)은 4.2%로 단기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마이너스는 아니었다. 순수출은 “내수 부진을 수출로 타개하고 있다”는 진단처럼 최근 5년간 지속적인 호조세를 보였다. 경제성장률 지표인 국내총생산(GDP)이 ‘내수+순수출’로 산정된다는 점에 비춰볼 때 내수 중에서도 투자가 살아나지 않으면 올해 0%대로 예고된 저성장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기침체 타개도, 관세전쟁 돌파도 결국 기업투자에 달렸다

하지만 지난 18일 대선 후보 토론에서 유력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성장과 일자리를 강조하면서도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거나 달성 가능한 정책을 설명하지 않았다. ‘노란봉투법’(사용자와 쟁의행위 범위를 넓히고 노조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조 관련법)에 대해 논쟁을 벌이면서도 이 법안이 기업 투자를 저해하고 경제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 법안을 밀어붙이는 이 후보에 대해 김 후보는 그저 “헌법과 민법에 위배된다”는 두루뭉술한 반격에 그쳐 법안의 실상을 국민에게 알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대선후보 경제 토론…'투자 활성화'는 쏙 빠졌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이재명 후보의 상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취지로 말한 것도 아쉬운 일이었다. “이사는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현 조항에 회사 외에 ‘주주’를 포함한 개정안은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 투자행위를 근본적으로 제약한다는 점에서 반시장적 성격이 강하다.

지금 국내 기업들은 중대 기로에 서 있다. 내수 부진과 무역전쟁의 내우외환 속에서 거의 모든 주력 산업에서 중국에 추월당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주력 수출시장인 미국에는 관세장벽이 버티고 있고 지난 30년간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안겨다 준 중국은 이제 대한(對韓) 흑자국으로 돌아섰다. 이런 상황을 돌파할 길은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기업의 선도적 투자와 기술력 확보밖에 없다.

우리 기업의 투자 실태와 환경을 짚어보기 위해선 두 가지 지표가 필요하다. 하나는 영업활동현금흐름(이하 현금흐름), 또 하나는 유무형 자산 순취득액(이하 투자)이다. 전자는 영업활동을 통해 기업이 벌어들인 현금 규모, 후자는 그 돈으로 공장·설비·특허 등을 사들인 투자금액을 의미한다. 연도별로 이 두 개의 흐름을 비교하면 잉여현금흐름(FCF)을 파악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기업이 손에 쥔 돈 대비 투자에 얼마나 썼는지를 알 수 있다는 얘기다.

2020년 우리나라 상장사의 현금흐름은 215조원. 그 뒤 260조원, 268조원으로 증가했다. 이어 2023년 246조원으로 꺾였다가 지난해 294조원으로 큰 폭의 반등세를 보였다. 2023년은 경제성장률이 전년도 2.6%에서 1.4%로 거의 반토막 난 해로 한국의 ‘캐시카우’인 반도체 경기가 급속도로 악화한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같은 기간 투자흐름은 현금흐름과 완전히 엇갈렸다. 2020년 179조원으로 시작해 계속 늘더니 2023년과 2024년엔 2년 연속 현금흐름을 추월해 292조원과 305조원을 각각 찍었다. 다시 말해 최근 2년간 FCF가 마이너스 흐름을 보였다는 얘기다. 대규모 자본을 필요로 하는 첨단산업 경쟁에서 기업 현금흐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런 흐름은 우리 경제에 두 가지 과제를 던진다. 첫째, 중국과의 제조업 경쟁이 본격화한 상황에서 우리 기업의 투자 여력이 고갈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투자가 핵심 지표로 작동하는 경제성장률을 방어하는 데 비상등이 켜졌다는 점과 직결된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철강 등 한국 주력 산업은 이제 중국과의 치킨게임이 불가피합니다.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투자를 이어가야 하지만 기업들이 버텨줄지 걱정입니다.” 물론 이런 우려에도 우리 기업이 그동안 착실하게 축적한 투자자산이 상당하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2024년 투자액이 2020년 대비 70%가량 늘었기 때문이다. 비록 미국 등 선진시장 투자가 증가한 영향이 크겠지만,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이 국내 고용과 소비에도 큰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사실은 이미 입증됐다.

두 번째 과제는 기업들의 말라가는 투자 재원을 어떻게든 해결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증자 아니면 차입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최근 삼성SDI 포스코퓨처엠이 증자를 발표한 배경이다. 하지만 만약 상법 개정안이 현실화하고 새 정부에서 소액주주를 위한 주주환원책 강화를 들고나오면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경우에서 봤듯이 적잖은 난관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기업의 차입 여력 역시 넉넉하지 않다. 국내외 경기가 나쁘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상황에서 금융사들이 선뜻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장 동력을 만들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해법은 이처럼 복잡다단한 문제를 타개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기업 투자 활성화를 빼놓고선 그 어떤 반전의 계기도 마련할 수 없다. 기업들이 미래 사업에 더 도전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하면서 필요한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하도록 투자 환경과 자본시장 제도를 개선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후보들에게 직접 자금을 융통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세금이나 보조금을 왕창 손대라고 할 수도 없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기업들이 투자를 감행할 분위기를 조성해달라는 것이다. 기업이 싫어하는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을 철회하고 온갖 인허가로 범벅된 낡은 규제를 혁파해달라는 것이다. 그것이 경기 침체와 과다 부채에 시달리는 가계 일자리와 정부 재정에도 이롭다. 국민에게 고성장 고소득을 약속하는 정치인과 그들의 약속을 믿고 싶은 유권자 모두가 이런 원리와 흐름을 깨우쳐야 우리 정치와 경제가 한 단계 더 성숙하고 발전할 것으로 믿는다.

조일훈 논설실장/취재 지원=김익환/이시은/류은혁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