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김문수 당 대선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 간 단일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9일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곧바로 파행을 빚었다. 김 후보는 단일화 없이 본선 후보로 나서겠다는 입장이지만, 당 지도부는 후보 교체 가능성까지 고려한 자체 로드맵을 진행하기로 해 추가 파장이 예상된다. 보수 후보 단일화가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 의총에 참석한 김 후보는 “당 지도부가 현재까지도 김문수를 끌어내리고, 무소속 후보를 우리 당의 대통령 후보로 만들기 위해 온갖 불법·부당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저 김문수가 나서서 이기겠다”고 완주 의사를 밝혔다. 이에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더 큰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맞받았다.

지도부는 당이 세운 로드맵대로 11일(후보 등록일) 전 단일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김 후보 등이 낸 전당대회 금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인용하면 후보 교체는 어렵다.

겨우 열린 단일화 의총, 15분 만에 '파국'

< 말리는 의원들 뿌리치고 퇴장 >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9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강제 단일화에 반대한다”고 발언한 뒤 의총장을 떠나려고 하자 조배숙 의원이 말리고 있다.  강은구 기자
< 말리는 의원들 뿌리치고 퇴장 >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9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강제 단일화에 반대한다”고 발언한 뒤 의총장을 떠나려고 하자 조배숙 의원이 말리고 있다. 강은구 기자
국민의힘 의원 총회가 파행으로 마무리되면서 후보 등록일(11일) 전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 간 협상을 통한 단일화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관측이 많다. 국민의힘은 자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한 후보의 경쟁력이 더 높은 것으로 나오면 강제 단일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김 후보 등이 낸 전당대회 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후보 교체 카드는 사라진다. 대선을 불과 한 달도 안남긴 시점에서 당내 단일화 내홍이 막장으로 치닫으면서 보수 진영이 자멸의 길을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인사도 없이 떠난 金

9일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는 지난 3일 전당대회에서 김 후보가 당 대선 후보로 당선된 이후 의원들과의 첫 상견례였다. 그동안 참석을 거부하던 김 후보의 등장이 예고되자 단일화의 실마리를 푸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초반에는 당 지도부가 김 후보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의원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모두 발언에서 “김 후보께서 살아온 삶의 궤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뜨겁게’ 살아온 분”이라며 “오해가 있으면 서로 풀고, 다시 하나로 똘똘 뭉쳐 대선 승리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단일화에 대한 강한 열망에 대해 언급하는 과정에서 제가 후보에게 다소 과격한 발언을 내놓은 바가 있다. 이 자리를 통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뒤이어 발언에 나선 김 후보는 “자랑스러운 의원 여러분,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화답하며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렸다. 그러나 곧바로 강경한 입장을 내놓으면서 분위기는 급속히 냉각됐다. 그는 “지금 단일화는 선거에서 한 번도 검증받지 않은 무소속 후보(한 후보)를 대선 후보로 만들어주는 작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당 지도부가 하는 강제 단일화에 응할 수 없다. 제가 나서서 이기겠다”고 밝혔다. 11일 전 단일화를 해달라는 당의 요구를 거부한 셈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곧바로 날선 반응을 내놨다. 그는 “발언 내용이 대단히 실망스럽다. 의원들께서 기대하신 내용과 완전히 동떨어졌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가 짧은 발언을 끝내고 의총장을 떠나자, 김 후보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지는 의원들의 만류에도 그는 인사 없이 굳은 표정으로 퇴장했다. 의총장에 들어선 지 약 15분만이었다.

◇ 법원 손으로 넘어간 단일화

이날 의총에서 김 후보와 의원들 간 협상마저 결렬되면서 당 주도로 강제 단일화를 하거나, 김 후보를 그대로 내는 방안으로 선택지가 사실상 좁혀졌다. 당은 자체적으로 이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 후보의 경쟁력이 더 높을 경우 전자를 택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후보를 입당시킨 후 11일 당 대선 후보로 등록하는, 사실상 ‘후보 교체’ 방식이다. 다만 김 후보에 대한 지지가 더 높으면 그를 본선 후보로 확정할 예정이다. 선관위 규정에 따라 이 여론조사는 득표율을 공개할 수 없다.

김 후보 등이 법원에 신청한 전국위원회·전당대회 개최 금지 가처분 결과가 변수다. 인용되면 11일이 되기 전 당내 단일화 절차를 밟을 수 없기 때문에 후보를 바꿀 수 없다. 일각에서는 아예 후보를 내지 않는 방안과 두 후보가 각각 따로 출마하는 방안도 거론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떨어진다는 평가다.

단일화를 둘러싼 의원들의 시각도 엇갈렸다. 이날 김 후보 캠프 본부장을 맡았거나 지지 선언에 나섰던 김대식·김미애·김선교·박수영·서천호·엄태영·조승환 의원(가나다순) 등 국민의힘 현역 의원 7명은 “김 후보는 무엇이 두려워 단일화를 망설이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한 후보와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우리는 김 후보가 강조해 온 단일화에 대한 진정성을 믿었기에 공개적 지지를 보냈었다”며 “대선 후보 등록일을 눈앞에 둔 지금이야말로 ‘감동적인 단일화’의 최적기”라고 주장했다.

반면 안철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강제 단일화는 대선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한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단일화에 뛰어드는 결기를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또 다른 중진들도 절차적 정당성을 고려하면 당 주도의 후보 교체는 옳지 않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정소람/하지은/정상원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