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5개월 전 통상임금 판결 여파로 전국 버스업계가 올해 임금협상에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 버스노조는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지난달 30일 하루 ‘경고성 준법파업’을 실시했다. 최종 물밑 협상이 무산되면 총파업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부산 버스 노사도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는 등 전국 버스업계 사정이 대동소이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작년 12월 산업 현장과 괴리된 친노조 판결을 내릴 때부터 예고된 파행이다. 당시 대법원은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의 세 가지 요건은 갖춰야 통상임금’이라던 판례를 불과 11년 만에 뒤집었다. 재직자에게만 지급, 최저 근무일수 등을 요건으로 하는 ‘조건부 상여’도 통상임금이라며 고정성 요건을 폐기한 것이다.

대법원 판례, 정부 지침, 노사 합의에 기초해 온 통상임금의 정의를 갑작스레 변경한 것은 기업들로선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였다. 각종 수당 지급의 기준액이 높아져 임금이 급증해서다. 버스업계는 연장·야간·휴일근로 비중이 높아 특히 파장이 크다. 서울 버스는 판례 변경에 따른 임금 인상분만 10%로 추산된다. 여기에다 기본급 8.2% 인상을 포함하면 올 한 해 임금 인상 요구율이 20%에 달한다. 접점 찾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노조 요구를 수용하면 6273만원인 서울 시내버스 기사 연봉은 단번에 7872만원으로 뛰어 8000만원에 육박한다. 직업적 전문성에 비해 높은 연봉인 만큼 올해만큼은 인상률 최소화와 취업규칙 변경 등 임금체계 개편이 필수다. 그런데도 노조는 합리적 해결책에 귀 막은 채 ‘대법 판결을 준수하라’며 일방통행이다. 노조 요구를 충족하려면 지방자치단체 지원 확대와 버스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결국 국민 부담인 데다 버스 준공영제에 따른 서울시 누적 부채가 이미 1조원에 달한 상황이어서 동의하기 어렵다.

통상임금 관련 어려움은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다. ‘고정성 요건 폐기’ 이후 수당 추가 지급 소송과 임금 인상 요구가 봇물이다. 중소 철강업계는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임금 인상률만 40%라는 분석이 나와 있다. 교대·야간근무가 필수인 병원도 지방을 중심으로 인건비 부담이 급증해 경영 위기와 채용 축소가 우려된다. 현실을 외면한 탁상 판결의 후폭풍을 대법원부터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