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제 중재가 싸움이라는 오해
최근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이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사업과 관련해 약 1조4000억원 공사비 정산 문제를 두고 영국 런던국제중재법원(LCIA)에 중재를 신청하면서 국내외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파국, 국제 망신 등 자극적 표현으로 다루기도 하지만 이번 사안은 보다 성숙한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바라카 원전 프로젝트는 한국이 처음 수출에 성공한 대형 원전 사업이다. 4기의 원전 상업 운전을 모두 성공시켜 한국 원전산업의 기술력과 사업 수행 능력을 전 세계에 입증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서는 설계 변경, 조달 지연 등으로 인한 공사비 정산이나 책임 범위에 대한 이견이 자주 발생한다. 전 세계 어디서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번 중재 신청은 감정적 갈등의 표현이 아니다. 계약서상 분쟁 해결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합리적 수단으로 봐야 한다. 두 기관 모두 독립된 법인이고, 사적인 정리보다 법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통해 분쟁을 투명하게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양측이 체결한 계약서에는 분쟁 발생 시 영국법에 따라 LCIA 중재를 받기로 명시돼 있다. 2년간의 협상 끝에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계약 절차에 따른 조치로 볼 수 있다.

이번 사안은 또 향후 원전 수출 경쟁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국제중재를 통해 비용 부담 기준, 리스크 분담 구조, 역할 책임 등을 명확히 하는 선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해외 원전 수주에서도 한국형 원전 수출모델의 신뢰성과 계약적 투명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국제중재는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소요되고 결과의 불확실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같은 리스크는 글로벌 인프라 사업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감수하는 것이며 오히려 이런 과정을 밟는다는 사실 자체가 국제 사업 수행 역량을 입증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번 중재 결과는 UAE 발주처와의 후속 협상에서도 분명한 근거가 될 것이다.

우리는 종종 내부 갈등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더 큰 부끄러움은 문제를 숨기고 방치함으로써 계약적 또는 관행적 결함이 반복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얼마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됐는지, 그 결과를 바탕으로 두 기관이 어떻게 파트너십을 회복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지에 달려 있다. 이번 중재가 단순한 분쟁 해결을 넘어 한국 원전 수출 관행이 성숙해졌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를, 또 다음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