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운동권의 황태자가 2025년 보수 정당의 대선 후보로 선택됐다. 지난 3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뽑힌 김문수 후보 얘기다.

1951년 경북 영천에 태어난 김 후보는 경북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무기정학됐다. 간신히 대학에 진학했지만 곧바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1971년 위수령과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두 차례 제적당했다. 혹독한 고문에도 동지였던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의 거취를 끝내 실토하지 않은 일화는 유명하다. 심 전 대표는 “김문수는 전설이었다. 운동권의 황태자이자 하늘 같은 선배였다”고 회상했다.

그의 삶의 방향은 1990년대 중반 급격히 바뀌었다. 재야 민주화운동 세력과 노동운동계를 모아 창당한 민중당이 민심을 얻지 못하고 흩어진 게 계기가 됐다고 한다. 소련 해체 및 공산권 붕괴도 그의 신념을 바꾸는 요인이 됐다.

결국 김 후보는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자유당에 입당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계열 정당이 강세를 보이던 경기 부천병 지역구에서 내리 3선(15~17대)을 했다. 2006년 경기지사에 당선됐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가 그의 대표 업적 중 하나다.

2012년 18대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졌고, 2016년 총선과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광화문 집회에 적극 참여하는 등 한동안 ‘아스팔트 우파’로 활동했다.

중앙 정치에 복귀한 것은 윤석열 정부 때다. 2022년 9월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됐다. 지난해 12월 11월 본회의에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모든 국무위원에게 일어나 계엄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라고 다그쳤을 때 김 후보만 거부하면서 그의 존재감은 급격하게 커졌다. 그는 이후 그 이유에 대해 “아무리 국회라도 국무위원에게 일어나 사과하라는 것은 갑질이고 일종의 폭력”이라고 답했다. 이를 계기로 보수 진영 내에서 김 후보 인기가 높아졌고, 결국 그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됐다.

여러 차례 논란도 빚었다. 경기지사 재임 시절 119 소방대원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전화한 음성이 공개된 게 대표적이다.

안시욱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