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프랑스-KLM의 여성 리더들이 답하다 … "질문하는 힘이 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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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한국지사장, 김소영 카고 한국지점장

2004년 합병으로 한 가족이 된 에어프랑스-KLM에는 또 눈에 띄는 점이 있다. 바로 여성 리더들이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문정 한국지사장은 한국 항공업계에 두 명뿐인 여성 지사장 중 한 명이고, 김소영 마틴에어 카고 한국지점장은 한국 물류 업계 최초의 여성 리더다. 항공업계 종사자 중 여성의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지만, 정작 여성 임원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들의 활약은 더욱 빛난다.
이문정 지사장은 1989년 유나이티드 항공에, 김소영 지점장은 1997년 KLM에 입사하며 항공업계 경력을 시작했다. 이들은 "처음 일할 때만 하더라도 여성은 이름이나 직함 대신 '김 양'으로 불렸다"고 증언할 정도이니, 그야말로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를 겪어온 셈이다. 항공업계 리더로서, 또 여성 리더로서 한 획을 긋고 있는 이들이 '여행의 혁신'에 대해 말했다.
업계 전문가로서 바라보는 현재 여행·물류의 트렌드는 무엇인가.
이문정 : 여행은 개인화, 세분화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업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만 해도 홍콩·방콕·싱가포르를 한 번에 여행하는 '홍방싱' 패키지가 유행했다. 지금은 개인의 취향과 스타일에 맞춰 한 도시를 깊이 있게 여행하는 것이 대세다. 여행의 개념도 달라졌다. 집을 나선 순간부터를 여행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즉, 공항과 비행기에서의 경험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소영 : 화물은 점차 소형화되는 추세인데, 이에 따라 맞춤형 서비스의 필요성이 늘고 있다. 특정 온도를 유지하거나 정해진 시간 내에 운송해야 하는 등 맞춤형 솔루션 제공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동시에 특수화물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온도 유지가 점점 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의약품뿐 아니라 전자기기도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문정 : 최근 두 항공사 모두 비즈니스 클래스 리뉴얼을 진행하고 있다. KLM은 2022년 프리미엄 컴포트 클래스를 선보이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프리미엄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에어프랑스는 차별화된 일등석 '라 프리미에르' 클래스를 확대 적용하고 있다. 좌석, 음식, 와인, 서비스 등 모든 부분에서 프렌치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김소영 : 에어프랑스-KLM 마틴에어 카고는 의약품과 생동물 운송 및 핸들링에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는 '애니멀 호텔'을 운영하는데, 동물 케어 전문가들이 상주하고 있다. 특수화물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자부한다.
챗GPT를 비롯한 디지털·인공지능 혁신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이문정 : 에어프랑스-KLM은 첨단 기술 도입에 적극적이다. 에어프랑스는 챗GPT 기반의 자체 AI 시스템 ‘탈리아’를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정비 부문에서는 부품 정보를 빠르게 검색할 수 있는 '찰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김소영 : 에어프랑스-KLM 마틴에어 카고는 온라인 플랫폼 분야에서 업계 선두 주자라고 자부한다. ‘마이카고(myCargo)’라는 플랫폼을 통해 항공편 스케줄과 운임을 손쉽게 확인하고 화물의 예약부터 조회, 추적까지 전 과정을 처리할 수 있다. 이 같은 디지털화는 직원들이 고객의 니즈에 정교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업무적으로 가장 큰 위기가 있었다면 무엇인가.
이문정 : 역시 코로나19 때다. 대부분 항공사가 운항 횟수를 줄이거나 단항했지만, 에어프랑스-KLM은 단항 없이 유럽 노선을 꾸준히 유지했다. 고객과의 약속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을 넘어 아시아 고객들이 유럽으로 향할 수 있도록 하는 통로의 역할을 해냈다는 점에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
김소영 : 물류에서는 반대로 화물 수요가 2~3배 급증한 것이 위기였다. 부족한 인력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난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물류 업계에서는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해외 매니저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다른 시장의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이문정: ‘내가 나일 수 있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방향임에도 상사의 지시라는 이유로 따라야 하는 분위기라면 업무 효율은 절대 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수평적인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면 KLM 승무원들은 유니폼에 운동화를 착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운동화를 신어도 된다’는 것과 ‘운동화를 신어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처럼 선택권을 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수평적인 문화에서는 자연스럽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더 해보겠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존재하기에 꼭 필요하다.
김소영 : 카고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에서 혁신 및 수평적인 문화는 필수다. 업계와 시장은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기존 프로세스에만 머물러서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다. 특히 고객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프론트라인 직원들의 경험과 의견을 존중하고, 이를 유연하게 프로세스에 반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성취를 가능하게 만든 힘을 꼽는다면.
이문정 지사장: 호기심과 질문하는 힘이다. 호기심이 많다 보니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여러 가지 일에 관심을 갖고 뛰어드는 편이다. 이것이 ‘지사장 이문정’을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워라밸',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회사의 조직 문화도 큰 영향을 줬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 특히 가족의 응원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
김소영 지점장: 좋은 상사와 동료다. 어떤 의견을 내더라도 함께 고민하고, 격려하는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었다. 항상 ‘왜?’라는 질문도 놓지 않았다. 질문을 할 때는 상대의 직함, 나이보다 그들이 지닌 지식과 능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문정 :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여성 직원들은 스스로 슈퍼우먼이 되려는 압박감을 지니고 있다. 아이도 잘 키우고, 집안일도 잘하고, 회사 일도 문제없이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러나 이는 과로를 불러올 뿐이다. 동시에 스스로 가진 유리천장을 깨길 바란다. 가족을 두고 출장을 떠나도 될지, 이 업무를 맡아도 될지 등 자신이 만든 제약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다.
항공업계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많지만, 그에 비해 여성 리더의 숫자는 적다.
이문정 :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25by2025'라는 캠페인을 추진해왔다. 2025년까지 항공업계 고위 관리직 여성 비율을 25%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 캠페인이다. 그러나 2025년이 된 지금도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항공업계 리더를 꿈꾸는 후배들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
이문정 :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했다. 사람은 계속해서 길을 떠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여행을 한 권의 책을 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항공업계는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써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긍정 에너지로 가득 찬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이다. 워킹맘 후배들에게는 아이에게 미안해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대신 아이가 보기에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임하면, 아이도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김소영 : 자기 일에 진정한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주어진 업무를 소화하는 데 그치지 말고, 항상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고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또, 내가 혹은 상대방이 누구인지, 나이가 몇 살인지, 결혼했는지 등 신상에는 신경 쓰지 말고 언제나 상호 존중하는 태도로 임했으면 한다.
김은아 한경매거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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