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이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공약 검증단’을 꾸려 주요 후보의 공약을 비교·분석합니다.

검증단은 정치·외교, 거시경제, 산업·환경, 복지·노동, 증권·금융, 부동산, 과학기술 등 주요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최고 전문가로 구성됐습니다. 검증단은 대선 후보들이 제시한 공약의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 등을 균형감 있게 진단한 뒤 독자에게 전달할 계획입니다. 첫 번째 검증 분야는 인공지능(AI) 산업과 인재 육성 공약입니다. 전문가들은 AI 정책이 가장 필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전략 등에서 미흡한 점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李 'AI 고속道 깔자'며 원전엔 침묵…金, 선언 뿐인 '20만 인재 양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인공지능 대전환(AX)을 통해 ‘AI 글로벌 3강’으로 도약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눈에 띄는 건 ‘AI 고속도로’다. 경제 부흥을 이끌었던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 사업과 인터넷 혁명을 부른 1990년대 말 광통신 인프라처럼 정부 주도로 데이터센터를 지방 곳곳에 짓겠다는 복안이다.

◇ 서로 다른 에너지 수급 전략

전문가들은 수도권에 들어설 여력이 없는 AI 데이터센터를 지방에 구축하겠다는 전략엔 공감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전력 지원 방안과 입주 기업 유치 전략, 인력 확보 계획 등 각론이 분명치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AI 고속도로’라는 책을 출간한 송경창 경북경제진흥원장은 “선진국에선 최고 수준의 AI 데이터센터는 1GW급 전력 필요하다고 점치고 있고, 이를 위해선 원전 등 기저 전원 대책은 필수적인데 관련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이 후보와 달리 AI 시대 에너지 공급 능력을 원전으로 확충하겠다고 공약했다. ‘전력 먹는 하마’로 불리는 AI 산업에선 원전이 기저 전원으로 필수적이라는 게 김 후보 측 설명이다. 다만 김 후보의 AI 공약은 전략 자체가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AI 및 에너지 3대 강국’을 내세웠으나, 구체적인 실행 전략이 없어 공약이 선언적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공약들이 구체성이 부족하고, 민주당과 대동소이한 면이 많다”고 했다. 그는 “GPU(그래픽처리장치), NPU(신경망처리장치)와 같은 원천기술 개발 지원, 글로벌 AI 융합센터 설립 공약은 이미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디지털전환위원회를 통해 추진 중인 사업”이라고 꼬집었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는 것으로 새로운 콘텐츠가 없다는 의미다.

◇ 국가 주도 GPU 구입은 공감

이 후보는 고성능 GPU 5만 장을 확보해 AI 연구의 ‘물꼬’를 트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올해 추가경정예산 1조5000억원을 통해 확보키로 한 1만장의 다섯 배 수준이다. 국가 주도 한국형 GPT(생성형 인공지능)인 ‘모두의 AI’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무료로 보급하겠다는 정책도 공개했다.

김 후보도 AI 공약에서 GPU 등 AI 핵심기술 인프라 확보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수량·방식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같은 정부 주도의 GPU 구매 대책에 대해 김정호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GPU를 통한 AI 개발을 정부와 민간 중 어느 쪽에서가 주도할지가 관건”이라며 “필요하면 10만대, 100만 대라도 도입해 (선진국과)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주도 AI 전략에 대한 찬반은 엇갈렸다. 이종석 금오공대 교수 IT융합학과교수는 “국가가 나서면 비효율성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며 “소버린 AI보단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 데이터 정책을 만드는 게 필요한데 대선 후보들 공약엔 없다”고 지적했다. 오픈 AI, 챗 GPT와 퍼플렉시티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이미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선 정부 주도로 공공 GPT를 만들 경우 ‘세금 낭비’가 될 공산이 크다는 우려다. 이지형 성균관대 인공지능학과 교수는 “카카오톡과 네이버가 구글의 시장 잠식을 막아낸 것 처처럼 주권 문제, 군사 안보적 차원에서라도 한국형 대규모언어모델(LLM)이 필요하다”고 했다.

◇ 민간 기업 참여 인프라 구축해야

이 후보와 김 후보는 공히 ‘100조원 규모의 AI 투자를 이끌겠다’고 약속했다. 이 후보는 AI 예산 비중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고, ‘민간 투자 100조 원 시대’를 이끌겠다고 했다. 김 후보는 글로벌 기업의 참여를 이끌 민관합동펀드를 같은 규모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최성호 경기대 교양학부 교수는 “(김 후보의) 해외기업 투자유치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현재로선 글로벌 빅테크, 투자자들이 한국의 AI 산업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이지형 교수는 “펀드 조성도, 투자도 좋지만 ‘정부 주도 돈 뿌리기’가 될 우려가 있다”면서 “정부 24에 AI를 전면 도입하는 사업 등 민간이 참여할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띄워 시장을 창출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인재 육성에 대해서도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 후보는 ‘AI 시대를 주도할 미래인재 양성 교육 강화’를 공약했지만, 구체적인 대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김 후보의 ‘AI 인재 20만명 육성’은 문재인 정부(10만명)와 윤석열 정부 정책(20만명)의 ‘복사판’으로 평가받았다. 최성호 교수는 “20만명을 양성하려면 산업계 수요의 수요와 대학의 역량 뒷받침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대훈/정영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