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대체불가' 롤스로이스
영국 롤스로이스가 1906년 선보인 은색 자동차는 정숙함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속도를 올려도 찻잔 하나 흔들리지 않았고, 차 안에는 ‘재깍재깍’ 시계 소리뿐이었다. “유령처럼 조용하다”는 감탄을 받은 이 차는 ‘실버 고스트(Silver Ghost)’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이후 롤스로이스는 신차에 ‘팬텀(Phantom)’ ‘레이스(Wraith)’ 등 유령을 뜻하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롤스로이스는 오랫동안 영국 왕실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돈만 낸다고 살 수 있는 차가 아니었다. 사회적 지위나 명성 같은 까다로운 자격이 필요했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도 장군 시절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차량 크기도 압도적이다. 의전용 특수 차량을 제외하면 세계 양산형 승용차 중 롤스로이스 팬텀보다 큰 차는 없다. 보닛 위의 ‘환희의 여신상’과 판테온 신전을 닮은 라디에이터 그릴은 명차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대영제국의 영화가 아직 남아 있다면 그것은 롤스로이스라는 말까지 나온다. 2003년 독일 BMW에 인수됐지만, 차량의 최종 조립은 여전히 영국 굿우드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유령 차’는 최근 영국의 대미 무역협상 카드가 됐다. 미국은 영국산 자동차에 부과한 25% 관세를 철회하고, 연간 10만 대 쿼터까지는 10%만 적용하기로 했다. 영국의 전체 대미 수출량과 비슷한 규모여서 사실상 관세 인하라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롤스로이스는 미국에서 생산할 수 없는 차”라며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이렇게 낮추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관세 전쟁이 벌어지자 각국 제품의 진짜 경쟁력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미국은 자국 내 생산이 어려운 품목에는 한발 물러나는 태세다. 우리나라 조선업이 러브콜을 받는 이유다. ‘막무가내’ 트럼프 대통령도 롤스로이스에 관세를 매기면 결국 미국 수요자만 손해라고 인정했다. 자유무역이 흔들리는 시대지만, 대체불가의 경쟁력을 가진 제품은 살아남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서욱진 논설위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