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외상 후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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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겪은 뒤 긍정적 발전
외상 후 스트레스와는 대비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가능
韓 산업화·민주화도 그 결과
공동체 고통 극복하면서
성장과 발전 꿈꿔야
조미현 금융부 차장
외상 후 스트레스와는 대비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가능
韓 산업화·민주화도 그 결과
공동체 고통 극복하면서
성장과 발전 꿈꿔야
조미현 금융부 차장
![[토요칼럼] 외상 후 성장](http://img.wvnryckg.shop/photo/202505/07.35400741.1.jpg)
입원 수속을 도와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어쩐지 슬픈 감정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충만함이 더 컸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생각을 잃지 않는 아버지와 나는 닮아 있었다. 스스로 자부심을 갖기도 하는 나의 남다른 회복력은 아버지에게서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에게 삶을 낙관적으로 대하는 힘을 물려받았다는 걸 자각하자 비로소 내 안의 뿌리가 단단해짐을 느꼈다.
![[토요칼럼] 외상 후 성장](http://img.wvnryckg.shop/photo/202505/AA.40428229.1.jpg)
아버지의 중병을 맞닥뜨리면서 느낀 것도 비슷했다. 삶에서 고통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가족을 위로할 수 있었다. 연차를 내고 아버지와 병원에 동행할 수 있는 일상이 감사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위로를 받으며 인연의 귀함을 되새겼다. 나쁜 것에는 언제나 좋은 것도 섞여 있게 마련이라는 소중한 진리를 새삼 깨달은 셈이다.
외상 후 성장은 비단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은 외상 후 성장을 이룩한 대표적인 나라다. 전쟁과 분단, 가난 속에서도 한강의 기적을 일궜다. 한강의 기적은 단지 경제적 성취가 아니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 고통 속에서 미래를 그리는 상상력, 개인의 이익보다 나라를 위하는 선한 마음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대한민국 민주화도 마찬가지다. 독재와 폭력을 겪으면서도 자유를 향한 갈망, 정의에 대한 믿음,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이 곳곳에서 발휘됐다. 최근 정치적 비극과 극단적 갈등을 겪으면서도 심각한 폭력이나 유혈 사태 없이 지나온 건 일부의 공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 성장한 우리 국민의 깨어 있는 지성과 절제력 덕분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항상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외상 후 가장 힘든 건 고통 자체가 아니라 그 고통이 왜곡되고 이용되는 현실이다. 재난이나 사고, 정치적 혼란 뒤엔 상실과 절망에 빠진 공동체에 원망과 비난의 씨앗을 심는 시도가 언제나 있다. 공동체의 아픔을 분열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고통의 원인을 특정 집단이나 인물에게 덧씌우고 그 분노를 정제되지 않은 형태로 사회 전반에 퍼뜨린다. 상처를 정치화하고 트라우마를 자극해 사람들을 고통에 묶어둔다. 이런 방식은 진정한 치유의 기회를 빼앗는다. 안타까운 건 직접적인 상처를 입은 이들이 그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오랜 세월 분열의 도구로 이용당하는 점이다.
단순히 고통이나 비극을 덮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고통은 직시해야 하고 비극은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고통과 비극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성장과 성찰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되묻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외상은 피할 수 없지만 그 이후의 삶은 선택할 수 있다. 외상 후 트라우마에 머물 것인지, 외상 후 성장을 이룰 것인지 선택에 따라 개인은 물론 사회 미래가 결정된다.
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만난 아버지는 자신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지 않으면 딸들이 다급히 전화를 걸어온다며 싱긋 웃으셨다.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 보였다. 치료가 고된데도 고통보다는 가족의 소중함에 더 집중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나 역시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해졌다. 슬픔에 잠식되지 않고 삶을 더 의미 있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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