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美 우주군이 대한민국 앞날에 주는 교훈
국제선 여객기가 이착륙할 때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누구에게나 이색적이다. 평소 커 보였던 토목·건축물과 대자연이 까마득한 점이나 선, 면으로 보이는 것이 마냥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때 고도는 비행기가 지표면에 상대적으로 가까울 때인 2000~3000m. 국제선 여객기의 비행 고도는 이보다 높은 1만m(10㎞) 안팎이다.

이 고도의 3600배 위에 ‘지구 정지궤도’란 곳이 있다. 이 궤도에 있는 위성은 늘 지구의 한 지점만을 24시간 바라보게 돼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정지궤도에선 위성의 공전 주기와 지구의 자전 주기가 같다. 궤도 높이는 위성의 원심력과 지구의 인력이 같아지는 방정식을 풀면 되는데 그 해(解)가 지구 상공 약 3만6000㎞다.

[토요칼럼] 美 우주군이 대한민국 앞날에 주는 교훈
이곳까지 갔다 온 미국의 무인 비행기가 있다. 미국 우주군(軍)과 6세대 스텔스 전투기 F-47 개발 기업으로 낙점된 기업 보잉이 함께 개발한 ‘X-37’이다. 올해 3월 430여 일간의 임무를 마치고 귀환했다. X-37은 2010년 4월 처음 우주로 향한 뒤 비밀 임무를 계속해 왔다. 임무 하나당 짧게는 수백 일에서 길게는 1000일 넘게 우주에 머문다. 미 우주군의 핵심 자산이다.

X-37의 임무 중 하나는 각국의 위성 등 우주 시설 현황 파악이다. 대부분 정찰 위성은 400~600㎞ 저궤도에 있다. 스타링크 등 통신 위성도 마찬가지다. 미국 GPS 위성과 러시아 글로나스 항법 위성은 중궤도인 2만㎞ 인근에 분포한다. X-37은 저궤도와 중궤도, 그리고 정지궤도까지 위성이 있는 모든 길목을 지난 15년간 샅샅이 뒤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특정 국가와 전쟁을 벌일 때 적국의 위성을 파괴할 수 있는 루트를 오랜 기간 공들여 파악했다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집권 1기 시절인 2019년 우주군을 창설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 해안경비대에 이은 여섯 번째 군종이다. 그동안 X-37이 쌓은 데이터 자산 등으로 볼 때 우주군을 창설할 만큼 인프라가 성숙했다고 본 것으로 전해진다. 한 해 국방 예산이 한국 돈으로 약 1000조원을 넘어 ‘천조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우주군의 위상과 역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24년 미 국방 예산 중 우주군의 비밀(classified) 예산을 보면 핵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감지하는 적외선 감시체계와 이를 지원하는 정지궤도 위성 등 개발에 26억달러(약 3조7000억원)를 배정했다. 이들이 감지한 ICBM을 저궤도와 중궤도에서 요격하는 미사일 개발에는 각각 15억달러, 8억달러를 편성했다. 이밖에 에너지부(DOE) 산하의 10여 개 핵물리학 연구소 예산도 국방예산 명목으로 들어가 있다.

우주를 연구하는 천체물리학자들은 속세를 살아가는 범인들 입장에선 한가하게 보인다. 사실은 그들의 연구가 산업화를 넘어 국가 안보를 결정하는 기술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X-37도 이들의 기여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리학자들이 수백 년간 우주에 천착한 결과물은 신기술 창출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신기술이 가장 만개한 분야가 우주다. 중국 역시 X-37을 본뜬 무인기와 그 이상 전략자산으로 우주전을 한창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F-22, F-35 스텔스기를 모방해 자체 스텔스기 J-35를 개발한 것처럼 말이다. 반면 한국은 우주군 전력화가 발등의 불이다. 합동참모본부 산하에 우주 관련 조직이 얼마 전 신설됐지만 존재감이 미미하다. 여기에 공군과 육군의 주도권 다툼으로 우주군 전력화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비행기 아래의 풍경처럼,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평소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가 안보는 특히 그렇다. 북한은 올 들어 핵 추진 잠수함을 과시하고 한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는 초음속미사일을 탑재한 5000t급 이지스함을 공개했다. 국가정보원은 북한이 우크라이나전 파병 대가로 러시아 정찰위성과 무인 비행기, 미사일을 이전받고 있다고 인정했다. 모두 우주 기술이다. 한국은 북·러 군사 동맹과 미·중 패권 전쟁의 한복판에 홀로 위태롭게 서 있다. 우주군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준비하고, 에너지 등 관련 산업을 이끌 국가 리더가 절실한 시점이다. 눈에 당장 좋게 보이는 것, 귀에 달콤하게 들리는 말보다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자강과 번영에 실질적인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