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점 앞의 질문...골목 갤러리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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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임지영의 예썰 재밌고 만만한 예술썰 풀기
즐거운 예술 향유 실험
즐거운 예술 향유 실험
1년간의 예술 향유 실험이 끝났다. 문래동 골목 한켠에서 운영하던 작은 갤러리의 문을 닫았다. 갤러리는 일종의 사고 실험의 장이었다. 우리는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얼마나 누리고 있나. 만약 경직되어 있다면 그것을 바꿀 방법은 없을까. 관점을 전환할 수는 없나. 오래전 갤러리를 하며 사람들이 예술을 얼마나 어려워하는지 알았다. 너무 낯설게 여겨 아예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그때도 다양한 기획을 하고 사람들을 모아 예술 교육을 했지만, 향유자가 되진 못했다. 그땐 여느 강좌처럼 예술을 지식으로 접근했고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다. 미술사 등을 공부하는 과정이 끝나면 사람들은 다시 갤러리에 오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그림이 걸려 있어도 봐주는 이 없인 먼지와 친구 되기 십상이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향유의 방식이 필요했다.
문래동 골목은 신기한 곳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이다. 오래된 철공소들과 좁은 골목들, 그 사이 사이에 감각적인 카페나 갤러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 갔을 때부터 남다른 감성을 느꼈다. 때마침 작은 공간과 인연이 되어 작은 갤러리를 열었다. 그림을 사고파는 곳이 아닌 그림을 보고 쓰는 공간이었다. 예술을 경험하고 향유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기획했다. 상업 갤러리에서 하기 힘든 모험이자 실험이었다.
사진. © 임지영
일단 모든 그림을 낮게 걸었다. 어린이들도 편히 볼 수 있도록 했고, 눈높이에 맞춰 재밌는 질문도 붙였다. 갤러리에 오는 모든 사람에게 오렌지 스티커를 주고 좋아하는 한 점 찾기를 했다. 스티커를 받는 순간,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나는 무슨 그림을 좋아하지? 나는 왜 이 그림에 스티커를 붙였지? 이 단순한 경험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림 한 점 앞에 오래 머무르게 했다. 그림으로 글을 쓰게 했다. 그림으로 말을 하게 했다. 그림으로 울게 했고, 또 해맑게 웃게도 했다. 가족들 호응이 제일 좋았다. 가장 가깝지만, 또 너무 가까워서 서로를 알기 쉽지 않은 사이. 그림 한 점으로 서로를 다시 보고 이해하고 안아주는 가족들이 많았다.
사진. © 임지영
예술 향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다. 아주 가벼운 것부터 심오한 것까지, 그림 한 점 앞에 멈춰선 이유부터 더 깊은 침잠까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우리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그렇기에 갤러리에서의 퍼포먼스는 사고 실험과 같다고 생각했다. 예술을 전혀 모르던 때와 누리고 난 후의 반응들. 처음의 쫄아있는 모습은 어디로 가고 좋아하는 그림을 찾아 나누는 기쁨과 터진 말문. 사람은 내향인이든 외향인이든 누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반드시 들어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예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림을 통해 만나는 것은 언제나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생각 등 그의 인생이다. 듣다 보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서로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예술은 너무 좋은 경험재, 공유재가 됐다.
이리 좋은 향유 경험장을 접기로 했다. 처음 오픈할 때도 한 일 년 재밌게 해보자고 결심한 터라 충분히 그 가치를 검증했다. 퍽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관점을 바꾸었고, 유연해지고 긍정적으로 됐다. 하지만 한계 또한 느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지만, 유료 참여자는 거의 없었고 대체로 무료로 운영해야 했다. 무료 프로그램이다보니, 예약하고서 안 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상황은 도서관이나 기관도 비슷하다. 강의를 열면 금방 마감되긴 하는데 출석률이 썩 좋진 않은 것. 물론 바쁜 시절이다. 예술을 말하고 향유를 이야기하는 게 잉여로운 사치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만의 리그라는 오해를 깨고 가깝고 재밌게 예술을 누려보자고 했던 향유 실험은 성공이었다. 예술 참 좋다고, 향유 너무 쉽다고 해맑게 웃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다만, 지속할 동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언제까지 공모 사업에 기대고 재능 기부에 의존할 수는 없으므로.
사진. © 임지영
사회는 불안하고 개인의 삶도 출렁인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언제쯤 행복해질까? 삶의 본질을 되묻게 된다. 우선 나에게 충실하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침대에 누워 자기 계발 유튜브를 보며 긍정 확언을 되뇐다고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 봄은 짧고 인생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한껏 누릴 수 있는 것은 지금 밖에 없다. 지금을 잘 사용해야 한다. 향유는 남아도는 여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악착같은 희망에서 온다. 절망에 발이 푹푹 빠지는 세상에서 잘살아 보자고 멋지게 살아내자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그림 한 점 앞에서 세상사 잊고 몰입해보는 것. 향유란 그렇게 절실한 생의 긍정이다. 계속하다 보면 삶을 사유하고 통찰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마침내 탁월한 인생 향유자의 탄생이다.
임지영 예술 칼럼니스트·(주)즐거운예감 대표
문래동 골목은 신기한 곳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이다. 오래된 철공소들과 좁은 골목들, 그 사이 사이에 감각적인 카페나 갤러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 갔을 때부터 남다른 감성을 느꼈다. 때마침 작은 공간과 인연이 되어 작은 갤러리를 열었다. 그림을 사고파는 곳이 아닌 그림을 보고 쓰는 공간이었다. 예술을 경험하고 향유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기획했다. 상업 갤러리에서 하기 힘든 모험이자 실험이었다.



이리 좋은 향유 경험장을 접기로 했다. 처음 오픈할 때도 한 일 년 재밌게 해보자고 결심한 터라 충분히 그 가치를 검증했다. 퍽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관점을 바꾸었고, 유연해지고 긍정적으로 됐다. 하지만 한계 또한 느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지만, 유료 참여자는 거의 없었고 대체로 무료로 운영해야 했다. 무료 프로그램이다보니, 예약하고서 안 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상황은 도서관이나 기관도 비슷하다. 강의를 열면 금방 마감되긴 하는데 출석률이 썩 좋진 않은 것. 물론 바쁜 시절이다. 예술을 말하고 향유를 이야기하는 게 잉여로운 사치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만의 리그라는 오해를 깨고 가깝고 재밌게 예술을 누려보자고 했던 향유 실험은 성공이었다. 예술 참 좋다고, 향유 너무 쉽다고 해맑게 웃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다만, 지속할 동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언제까지 공모 사업에 기대고 재능 기부에 의존할 수는 없으므로.

임지영 예술 칼럼니스트·(주)즐거운예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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