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2000코인? 가상화폐로 임금을 지급할 수 있을까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내에 불법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스테이블 코인으로 임금을 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은행 계좌가 없어도 디지털 지갑만 있으면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본국에 저렴한 수수료로 즉시 송금이 가능하다는 점이 주요 이유로 꼽힌다. 급여 지급이나 송금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규제를 우회하는 방법으로도 여겨져 일부 업종에서는 관행처럼 굳어지는 양상까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국내 기업이 자사 소속 근로자에게 공식적으로 가상자산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특히, 블록체인 기술과 관련된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자사 인력에게 마치 스톡옵션처럼 코인을 지급하는 방식은 이미 수년전부터 꾸준히 논의되어 왔다. 기업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비용으로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임직원의 입장에서도 경우에 따라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려된 것이다. 나아가, 블록체인 관련 영업을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자체적으로 코인을 발행하고 임직원에게 해당 코인을 급여로 지급함으로써 홍보효과를 얻고 임직원과 성장의 결과를 공유하고자 하는 수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임금의 지급방법에 관한 근로기준법의 규제가 엄격하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제43조는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다만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다른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만을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여기서 ‘통화’란 대한민국에서 강제통용력을 가지는 화폐, 즉 원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규제는 많은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며, 국제노동기구(ILO) 임금보호협약도 “금전으로 지불한 임금은 법정화폐로 지불하여야 하며, 약속어음, 수령증 또는 상품권 등의 형식 또는 법정화폐를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되는 기타의 형식에 의한 지불은 금지하여야 한다”라고 명시적으로 통화에 의한 지급을 규정하고 있다(제3조).

우리나라의 경우 법령으로 통화지급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한 경우는 매우 드물어서, 선원법에서 선원에게 임금의 일부를 기항지에서 통용되는 통화로 지급한다는 조항(선원법 제52조) 정도를 찾아볼 수 있다. 그 밖에 최저임금법에 ‘통화 이외의 것으로 지급하는 임금’의 최저임금 산입에 관한 규정이 있으나 통화지급원칙에 대한 예외를 직접 규정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과거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조례로 임금 일부를 지역화폐로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으나, 이에 관해 법제처는 지방자치단체 관할 구역에 한정되는 효력을 갖는 조례는 통화 지급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해석한 바 있다.

단체협약을 통해 가상자산 지급 방식을 명문화하려는 검토도 있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근로기준법 제43조는 단체협약에 의해 ‘통화 이외의 방법’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예외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부 인재에 대한 특별한 보상 수단을 확보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기가 어려웠고, 많은 기업에서는 노조 자체가 없기 때문에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임금이 아닌’ 성과급으로서 가상자산을 지급하는 것은 가능할까? 일부 기업은 실제로 이러한 방법을 고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로기준법상 통화지급 원칙은 ‘임금’에 한하여 적용되므로, 성과급이 임금이 아니라면 성과급을 가상자산으로 지급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성과급의 경우에도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 근거하여 근로자들에게 계속적,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경우라면 임금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어서, 임금성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걸림돌이 되었다. 특히, 일반적인 가상자산의 경우 가치의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지급 이후 급락할 경우 근로자가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일단 문제가 제기되면 성과급의 임금성에 대한 논란으로 분쟁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도 거론되었다.

복지포인트 형태로 가상자산을 지급하는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 선택적 복지제도의 일환으로 지급되는 복지포인트는 근로기준법상 임금에 해당하지 않으므로(대법원 2019. 8. 22. 선고 2016다48785 전원합의체 판결), 가상자산 방식의 지급도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복지포인트는 상대적으로 소액이어서 기업이 의도하는 홍보목적이나 우수인재 유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그에 비해 사내규정 정비 등 절차적으로는 복잡한 점이 난점으로 꼽힌다.

만약 스테이블 코인이 정식으로 허용된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스테이블 코인은 일반적으로 특정 법정화폐(예: 미국 달러)에 연동되어 가격이 안정되도록 설계된 가상자산이다. 대선 주자나 일부 정치권에서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의 논의와 함께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의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고, 한국은행 역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다만, 민간 기업이 보증하는 스테이블 코인은 국가가 발행하는 법정통화와는 달리 법적 강제통용력이 없기 때문에, 원화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이 허용되더라도 여전히 근로기준법상 ‘통화’로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법체계 하에서는 기업이 임금을 가상화폐로 지급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어렵다. 기술이 진화하고 산업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임금 지급은 노동의 핵심 권리이자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법은 여전히 안정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다만 지금은 단순한 금지보다는 기술 발전과 법적 안정성을 조화롭게 연결할 수 있는 제도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ILO 임금보호협약도 통화 아닌 방식의 임금지급을 엄격하게 금지하면서도 “산업 또는 직업의 성질상 현물급여의 형식에 의한 임금의 지불이 관습이거나 바람직한 경우” 그러한 지불이 허용된다고 정한 바 있다. 가상자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산업이나 기업에서부터, 해당 기업이나 모기업 등이 지급을 보증하는 방식으로, 일부 성과급이나 선택적 급여에 한정하여 지급하는 ‘바람직한’ 지급 방식을 모색해 볼 수도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구자형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