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원유를 구입하는 국가를 제재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언에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가 남몰래 웃고 있다. 값싼 이란 원유를 많이 쓰는 중국 업체들이 타격을 받는 만큼 반사이익이 기대돼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이란에서 원유와 석유화학 제품을 조금이라도 구매하는 국가나 사람은 즉시 2차 제재 대상이 될 것”이라며 “미국과 어떤 방식·형태·유형으로든 사업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2차 제재는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과 거래하는 제3자도 미국과 교역·금융 거래 등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다. 미국이 핵무기 개발과 중동 반군단체 지원 중단을 놓고 이란과 벌이는 협상에 진전이 없자 압박 수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말레이시아 등지를 우회하거나 운송 중 선박을 바꿔치기하는 방식으로 이란 원유를 수입하고 있는 중국에 트럼프 대통령이 실질적인 제재를 가하겠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란이 수출하는 원유의 약 90%는 중국으로 향한다. 업계에선 미국이 중국산 정유·석화 제품에 대한 관세 장벽을 높이거나 해당 부문에 금융 제재를 시행할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국내 정유업계에는 희소식이다. 그동안 중국 정유기업들은 두바이유보다 배럴당 10~20달러 싸게 이란 원유를 구입했다.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대다수 국가가 이란 원유를 꺼린 게 중국의 저가 구매를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앞으로 이란-중국 원유 수출 경로가 막히면 값싼 원유를 기반으로 휘발유·경유·등유 등을 만들던 중국 기업의 생산 비용이 올라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산의 경쟁력이 지금보다 높아진다. 석유화학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이란 원유를 통해 에틸렌 등 기초 제품을 저렴하게 생산하기 어려워져서다.

일각에선 중국이 이란 원유 수입을 중단하지 않고 최근 불거진 ‘관세전쟁’ 대응 방식과 똑같이 미국 제재를 맞받아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 경우 글로벌 정유·석화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란의 중국 원유 수출길이 막히면 국내 기업에는 더할 나위 없는 호재가 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미·중이 힘 대 힘으로 맞붙으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예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