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아파트 전경 사진=연합뉴스
세종시 아파트 전경 사진=연합뉴스
전국 주택시장이 장기간 하향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서울 일부 지역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이 해제된 후 한 달여 만에 확대 재지정되면서 잠시 들썩였지만 이후 전반적으로 관망세가 짙습니다. 게다가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서 최근 주택시장에 악재로 여겨졌던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실한 정책으로 구체화하기 전까지는 섣불리 움직이기보다는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이처럼 시장이 뚜렷한 방향성이 없는 시기에는 활황기 또는 침체기보다 작은 이슈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수요자들은 분명 매입 의향은 있지만, 무엇을, 언제 사야 할지 판단하는 중이기 때문에 특정 이슈가 확실한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수요가 단기간 한 곳으로 집중될 수 있습니다.

최근 세종시 사례가 전형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들어서면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정당의 공약이나 정치적인 발언 하나하나가 시장을 출렁이게 만듭니다. 세종시는 선거철마다 대통령실 이전이나 행정 수도 완성과 같은 공약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양상을 보여왔습니다.

2020년 세종시 아파트 매매가격은 연간 44.93% 상승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3년간은 0.78%, 17.12%, 4.15% 등 지속해서 하락했습니다. 단기간 지나치게 주택가격이 과열됐고 공급과잉이 겹치면서 급등 이후는 전국에서 하락률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아파트 전세가율 역시 전국 최저 수준이었죠.

그런데도 선거철만 되면 주택 가격에 날개를 단 듯 호가가 급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택가격을 결정짓는 가장 본질적인 요인은 위치입니다. 교통, 학군, 생활편의시설 등과 같은 주요 인프라는 물리적인 위치가 결정하는데, 이는 토지의 부동성이라는 특성상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위치는 고정돼 있어도, 사회적·경제적·행정적 위치는 변할 수 있습니다. 지방에 있는 주택을 서울로 옮길 수는 없지만, 지방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세종시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세종시는 2012년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출범했습니다. 수도의 기능을 분산하고 국가의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 조성된 계획된 도시입니다. 세종시의 본래 행정적 위치는 ‘충청남도 연기군’과 ‘충청북도 청원군입니다. 현재도 물리적 위치는 변하지 않았지만, 행정 수도로서의 위상을 부여받으면서 토지의 사회적·경제적 가치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과거 평당 수만원에 불과했던 땅값은 수백만원, 수천만원대로 올랐고, 한솔동 첫마을 아파트의 분양가는 2012년에 약 3억원 정도였지만, 현재는 6억원대, 2021년에는 10억원 이상에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토지의 활용 방식과 정책 방향에 따라 가치는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신도시 개발이나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추진되면, 용도지역이 상향 조정(‘종 상향’)되어 개발 밀도가 높아지고(예컨대 2종 일반주거지역이 3종으로 변경되면, 건축할 수 있는 면적이 약 25% 늘어남), 지하철역이나 쇼핑몰 같은 생활 인프라가 들어서면 지역의 위상이 상승합니다. 실제로 반도체 클러스터 개발로 인해 용인시는 ‘반세권’(반도체+역세권)이라는 별칭과 함께 땅값이 크게 올랐습니다.

혁신도시 유치처럼 대기업 이전이나 산업단지 조성은 단기적으로 집값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지역 경제와 주민 소득을 끌어올려 해당 지역의 위상을 바꿔놓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개발제한구역, 토지거래허가구역,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등으로 지정되면 규제 강화와 금융 제약으로 인해 주택 시장은 쉽게 위축됩니다. 결국 부동산의 사회적·경제적·행정적 위상은 정부 정책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한 실수요만으로 주택가격이 크게 오르거나 내리는 경우는 드뭅니다. 수요는 인구 및 가구 증가에 따른 실수요의 확대나 거주 목적이 아닌 투자 수요의 유입 여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지금처럼 인구 감소가 본격화된 상황에서는 실수요의 성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시장 흐름의 변화에 있어서 정부의 정책은 역할과 책임이 더 커졌습니다.

보통 투자는 시황을 공부하고 매입과 매도의 타이밍을 어떻게 가져가는지에 따라 개인의 이익 실현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은 초기 자금이 많고 세금 제도도 복잡해서 판단을 잘못하면 큰 손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우스푸어’, ‘영끌이’(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빚투족’(빚내서 투자)과 같은 신조어는 그 위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따라서 부동산은 무분별한 투기나 도박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되며, 최악의 상황이 발생해도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정부와 부동산 시장 참여자는 주택시장이 정책이라는 설계도 안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습니다. 정책의 한 마디가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을 뒤흔드는 파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한 언어와 정밀한 정책 수립이 필요합니다. 또한 시장 참여자는 시황의 흐름을 읽고 정책에 관심을 기울이되, 이에 휘둘리지 않고 본인의 자산 및 현금흐름과 생애주기 속도에 맞춰 신중한 판단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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