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가 없던 시대, 와인병은 어땠을까
그림 속 수사의 미소를 보라. 이보다 더 행복해 보일 수 없다. 미소가 화폭 밖으로 곧 튀어나올 것 같다. 나라도 맛있는 와인을 한 병도 아니고 두 병이나 손에 넣었다면 그럴 것 같다. 그래서 제목도 ‘행복한 수사’, 이탈리아 화가 가에타노 벨레이(1857~1922)의 작품이다. 초상화로 유명한 화가로, 작품마다 인물의 표정이 생생하기 그지없다.

수사의 미소 다음으로는 와인이 담긴 병이 눈에 들어온다. 목이 짧고 몸통은 눈물방울 모양으로 둥근 이 병은 이탈리아 전통 양식인 피아스코다. 몸통의 절반 이상을 감싸는 바구니 또한 전통 요소로 ‘살라’라는 늪의 잡초를 말린 뒤 황으로 표백해 엮어 만든다. 병을 보호해주는 것은 물론 유리를 불어 만들었기 때문에 둥글 수밖에 없는 바닥을 평평하게 잡아준다.

가에타노 벨레이 ‘행복한 수사(The happy monk)’(1883)
가에타노 벨레이 ‘행복한 수사(The happy monk)’(1883)
와인병의 역사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우리가 잘 아는, 몸통이 길쭉한 와인병의 형태는 1790년대에 완성됐다. 250년 가까이 됐다. 하지만 와인의 역사를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짧다. 기원전 몇천 년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전엔 어떻게 와인을 담아 저장하고 보관했을까.

유리의 발명 이전까지 이 역할은 자기 혹은 도기가 맡았는데, 역사가 대략 기원전 6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도기든 자기든 흙을 빚어 구워 만든 용기는 기본적으로 다공질 즉 구멍이 무수히 많이 뚫려 있는 조직이다. 최악의 경우 와인이 스며 나올 수 있다. 그래서 밀랍이나 송진을 내부에 코팅해 (말하자면) 방수 효과를 냈다.

고대 로마에서는 지금도 대량 보관 및 숙성에 쓰이는 참나무통이 와인에 쓰이기 시작했다. 와인을 편하게 담아 바다로든 육지로든 옮길 튼튼한 용기가 필요했는데, 해답을 고대 켈트인인 골 사람들로부터 찾았다. 그들이 맥주를 담아 운반하는 참나무 혹은 오크통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이후 참나무통은 특히 레드와인 장기 보관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원이 됐다. 와인을 담았던 통을 위스키 숙성 마무리에 써 특유의 향을 입히는 등 주종 간 통 교환도 이뤄지고 있다.

유리병이 와인에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17세기다. 여러 설이 있지만 영국의 케넬름 딕비 경(1603~1665)이 ‘현대 와인병의 아버지’로 알려졌다. 처음 등장한 유리병은 지금 쓰이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모가지가 달린 주전자’라고 표현하면 적합할까. 1821년에는 리케츠 오브 브리스톨이라는 기업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형태의 유리병을 제조하는 기기의 특허를 냈다.

이용재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