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 ESG 키워드 포커스
② EU 옴니버스 패키지
EU 옴니버스 패키지, 규제 완화인가 전략 전환인가
2025년 2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기업의 지속가능성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옴니버스 패키지’를 발표했다. 이번 옴니버스 패키지는 기업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 EU 택소노미 등 기존 체계 전반에 걸쳐 구조적 간소화를 담았으며, 유럽 내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을 운영하는 한국 기업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EU 옴니버스 패키지 핵심 요소는

이번 제안의 핵심은 행정 부담 완화와 보고 대상 축소다. 기존 CSRD는 직원 수 250명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했으나, 개정안은 직원 수 1000명 이상, 연 매출 5000만 유로 또는 자산총액 2500만 유로 이상 기업으로 축소했다.

이에 의무공시 대상 기업이 80%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원래 2026~2027년 보고 의무가 예정되어 있던 중견기업 및 상장 중소기업(소위 웨이브 2·3 기업)의 보고 일정도 2028년 이후 2년씩 연기됐다. 이는 규제 이행에 어려움을 겪던 여러 중소·중견기업에 숨통을 틔워주는 조치인 동시에 일부 기업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략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시간 여유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CSDDD 또한 완화됐다. 기존에는 기업이 전체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인권·환경 관련 리스크를 식별하고 대응할 의무가 있었지만, 개정안은 ‘직접 비즈니스 파트너’로 실사 범위를 한정했다. 즉 간접적 공급업체나 하청 파트너에 대해서는 특별한 리스크 정보가 없는 한 실사 의무가 적용되지 않도록 조정됐다.
실사 주기도 매년 1회에서 5년 주기로 조정됐으며, 이해관계자 참여와 기후변화 전환 계획 이행 관련 조항 역시 완화됐다. 특히 기업의 법적책임 부과 조항이 삭제되면서 민사상 책임 부담도 일부 해소되었다는 점은 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만, EU 회원국이 개별적으로 민사책임 제도를 마련할 수 있도록 했다.

EU 옴니버스 패키지, 규제 완화인가 전략 전환인가


EU, 지속가능성 규제 잇따라 완화

EU 택소노미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당초 CSRD 적용 대상인 기업의 경우 2025년 택소노미 공시 대상에 포함됐으나 공시의무를 2028년까지 유예하고, 대기업으로 제한했다. 공시 서식 간소화로 인해 보고 템플릿은 약 70% 간소화된다.

‘재무적 중요성 임곗값’ 개념을 도입해 총매출액 또는 자본적 지출(CapEx)의 10%를 넘지 않는 비핵심 활동에 대해서는 적격(eligible), 적합(aligned)을 평가할 필요 없도록 보고가 면제된다. 이러한 조치는 금융기관의 녹색 자산 비율(GAR) 산정 및 비금융 기업의 ESG 대응 부담을 동시에 완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도 일부 완화된 조정안이 나왔다. EU 내 중소기업(SME) 및 개인이 소량의 CBAM 대상 품목을 수입하는 경우 CBAM 의무 면제되고, 연간 50톤(약 80톤 CO2 배출량에 해당) 이하를 수입하는 자는 CBAM 의무에서 면제 대상이 됐다. 이어 신고 항목 간소화와 함께 전력의 간접배출 의무를 삭제하고, 원자재에 대한 탄소배출 기본값을 사용 확대하도록 했다. 탄소배출 보고서는 2026년으로 유지되지만, 인증서 구매 시기는 2027년으로 연기됐다.

이처럼 EU 옴니버스 패키지는 EU의 지속가능성 규제를 일부 완화하려는 정책적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그 배경에는 중소기업의 과도한 행정 부담과 유럽 산업 전반의 경쟁력 저하에 대한 우려, 최근 국제 통상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규제 완화? ESG 진정성 시험대 올라

EU의 이 같은 완화 조치는 역설적으로 기업에 ESG 경영의 ‘진정성’을 입증해야 하는 새로운 기준의 출현을 의미한다. 즉 규제 여부와 무관하게 ‘왜 우리는 ESG를 실질적으로 실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기업 스스로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하지 못하면 투자자와 소비자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많은 글로벌 기업은 법적 규제를 기다리기보다 자체적 ESG 기준을 수립하고, 공급망 전반에 걸쳐 강화된 정보 요구와 자율 규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ESG가 단순한 보고 의무를 넘어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옴니버스 패키지 개정안은 아직 입법 제안 단계이며, 향후 유럽의회와 이사회의 심의를 거쳐 정식 입법 절차를 밟게 된다. 일부 조항은 신속 입법 절차를 통해 조기 확정될 가능성이 있으나, 대부분의 조항은 몇 개월간 조율과 타협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또 위임법(Delegated Acts) 형태로 제안된 EU 택소노미 관련 조항은 상대적으로 빠른 채택이 예상된다. 이처럼 법안의 세부 내용은 입법 과정에서 일부 조정될 수 있으므로, 기업은 변화의 방향성과 적용 시점을 면밀히 주시하며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개정안이 최종 확정돼 시행될 경우 기업의 경제적 부담 경감 효과는 다음과 같이 예측된다. 우선, CSRD 및 CSDDD의 적용 기준이 완화됨에 따라 지속가능성 보고 및 실사의무를 부담하던 기업의 행정적 부담과 규제 준수 비용이 상당 부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보고 대상 기업의 범위가 축소되고, 보고 일정이 연기됨에 따라 기업은 ESG 전략과 내부통제를 보다 체계적으로 정비할 수 있는 추가 시간을 확보 가능하다.

더불어 보고 수준 완화로 인해 ESG 데이터 수집 및 공시를 위한 인적·물적 자원의 투입이 줄어들고, 내부 관리 비용의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일부 기업은 적용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됨으로써 신규 시스템 구축이나 외부 감사 대응에 들어가는 초기 투자 비용을 회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완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대기업 및 유럽 내 주요 거래처는 여전히 공급망 전반의 ESG 정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다국적기업은 자체 기준에 기반한 ESG 리스크 관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EU 규제 외에도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과학 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 등 다양한 국제기준과의 병행 대응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기업은 법적 보고 의무가 완화되어도 지속가능성 정보의 신뢰성과 관리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장기적 경쟁력 확보에 필수임을 인식해야 한다.

7가지 전략적 대응 방안은

EU 옴니버스 패키지는 단순히 규제 강도를 낮추는 정책 조정이 아니라 기업에 ESG 경영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하는 ‘전환점’으로 볼 수 있다. ESG 규제가 일부 유예되고 대상 기업이 축소됐지만, 이는 결코 ESG 요구 자체의 후퇴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법적 구속력이 다소 완화된 지금 시점에서는 기업 스스로 ESG의 추진 방향성과 진정성을 입증해야 하는 시기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이번 완화 조치는 기업에 ESG 대응을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 여유’를 제공한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단순한 유예가 아닌 ESG 정보의 질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 수립과 내부 역량 강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과 공급망에서는 여전히 ESG 정보의 신뢰성과 이행 수준이 거래와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치며, 실제로 그 기준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대기업, 금융기관, 주요 수출국은 점점 더 정교한 ESG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규제 여부를 떠나 기업의 실질적 ESG 대응 역량이 평가기준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특히 한국 수출 기업은 ESG 역량을 체계적으로 내재화하기 위해 7가지 전략적 대응 전략(▲적용 대상 여부의 정확한 판단 ▲보고 체계의 유연한 정비 ▲공급망 실사 전략의 조정 ▲법적·평판 리스크 관리 체계 강화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 강화 ▲전환 계획 및 넷제로 전략 재정비 ▲글로벌 ESG 요건과의 연계 전략 수립)을 고려해야 한다.

EU 옴니버스 패키지, 규제 완화인가 전략 전환인가


ESG, 이제는 전략이다

이번 EU 옴니버스 패키지는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ESG를 전략적 프레임으로 재정립할 시점임을 시사한다. 특히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와 보호무역 강화 등으로 국제 통상 질서가 급속히 재편되는 상황에서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인지하고, 중장기 전략과 기업의 미래성장 방향에 이를 적절히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ESG는 단순히 규제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기업의 리스크 관리와 시장 신뢰 확보를 위한 필수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자발적이고 체계적인 ESG 대응 역량을 갖춘 기업만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실현할 수 있으며, 이는 법적 요건을 넘어선 ‘경쟁 우위’의 기준이 된다.

ESG는 단순한 규제 대응 차원을 넘어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가장 실효성 높은 준비책이 될 것이다. 이 전환기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ESG를 경영의 중심축으로 삼는 기업만이 변화하는 글로벌 시장 환경에서 새로운 기회를 선점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연경흠 한국 딜로이트 그룹 One ESG 수석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