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문항에 해당하는 여행자라면 강화의 다양한 여행지 중에서도 원도심을 가장 먼저 들러보자.

1. 뚜벅이 여행자다
2. 당일치기로 강화 여행을 계획 중이다
3. 역사 유적지에 관심이 많다
4. 기념사진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5. 소소한 체험을 하고 싶다

강화 원도심(강화읍)은 고려 시대에서 대한제국에 이르는 강화의 지난한 역사가 스며있다. 관련한 역사 유적지가 한 데 모여있어 산책하듯 방문하면, 어떤 곳에서는 왕의 한탄이, 군병의 애환이, 독립에 대한 피 끓는 염원이 들려와 먹먹해지기도 한다.
고려에서 대한제국시대로 타임 루프, 흥미진진 강화 원도심

강화는 고려의 도읍지였다
-고려궁지

고려 원종 19년(1232)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송도에서 강화로 수도를 옮겼다. 강화는 고려의 도읍지로 ‘강도’라 불렸다. 이때 옮겨진 도읍 터가 고려궁지로서 개성으로 환도할 때까지 39년간 사용되었다. 강도에는 고려의 궁전, 사찰, 사직, 내성과 외성 등 성곽이 축조되었고 몽골로부터 나라를 방어했다.
강화 고려궁지, 외규장각이 중심 건물로서 복원되었다
강화 고려궁지, 외규장각이 중심 건물로서 복원되었다
강화는 예로부터 천혜의 요새로 조선시대에도 임금과 조정의 피난처이자 실록과 왕실 서적의 보장처로서 큰 역할을 했다. 1270년 강화조약 조건으로 허물어진 도읍 터에 조선 인조 9년(1631) 행궁을 지었는데 안타깝게도 병자호란과 병인양요가 일어나 행궁 건물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복원된 외규장각에 전시한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사진=이효태)
복원된 외규장각에 전시한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사진=이효태)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한 외규장각 의궤는 지난 2010년 145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현재 행정 관아인 강화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외규장각 등이 복원되어 강화에 서린 역사를 비춘다.

강화도령이 살았던 초가집이 기와집이 되었네
-강화 용흥궁

고려궁지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430m 거리에 용흥궁이 있다. 으리으리한 사대부 집보다 규모는 작지만, 돌담과 누마루까지 살림집의 위엄이 드러난다. 용흥궁은 조선 제25대 왕, 철종(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용흥궁 가는 길, 돌담장이 어여쁘다(사진=이효태)
용흥궁 가는 길, 돌담장이 어여쁘다(사진=이효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왕이 살던 초가집을 허물고 건물을 새로 지으며 용흥궁이라 이름했다. 한편으로는 철종이 직접 새로 집을 지으라 지시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철종은 사도세자의 증손으로 1847년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명으로 19세의 나이에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담장 안의 용흥궁(사진=이효태)
담장 안의 용흥궁(사진=이효태)
항렬로 따지면 헌종보다 철종이 웃어른이니 그 뒤를 잇는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조선 말기는 혼돈 그 자체였다. 실제 철종이 거처한 초가집은 사라졌어도, 강화도령에서 갑자기 왕이 된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도 용흥궁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건물 뒤편에 자리한 사랑채, 누마루가 아름답다(사진=이효태)
건물 뒤편에 자리한 사랑채, 누마루가 아름답다(사진=이효태)

용흥궁과 이웃한 대한제국 시대의 종교 성지
- 성공회강화성당

100년 전에 ‘모던하다’라는 말을 썼다면, 필시 성공회강화성당을 두고 ‘모던하다’ 즉 현대적이라고 했을 것 같다. 한옥의 형태를 띤 건축물은 서유럽의 바실리카(Basilica) 양식과 동양의 불교사찰 양식을 더했다.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성공회강화성당만의 유니크함(사진=이효태)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성공회강화성당만의 유니크함(사진=이효태)
일반인은 물론 순례지로서 성공회강화성당을 찾는 이도 많다(사진=이효태)
일반인은 물론 순례지로서 성공회강화성당을 찾는 이도 많다(사진=이효태)
성공회강화성당은 광무 4년(1900), 대한성공회의 고요한(Corfe,C.J.) 초대 주교에 의해 건립되었다. 대한제국 시대에 들어선 가장 오래된 한옥성당으로 높다란 천장에 반듯한 서까래, 고풍스러운 조명이 이질적이고 아름답다. 화려한 장식 없이 교회기능에 맞춰 꾸민 내부에는 100년의 역사를 담은 흑백 사진들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염집 규수가 살고 있는 듯 비밀스럽고 아름답다
- 소창체험관

드르륵, 소창전시관의 문을 열자 문화해설사가 반가이 손님을 맞이한다. 전시관 너머에는 소창체험관에서 직접 재배한 목화가 하얀 솜을 봉긋 피워올린 것이 보이고, 직조시연관에서는 소창을 만드는 기계가 분주히 돌아간다. 소창이란, 목화솜을 틀어 만든 평직물로 이불, 베개, 행주, 기저귀까지 생활 곳곳에 쓰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소창체험관, 마당과 정원을 중심으로 주요 시설이 자리한다(사진=이효태)
소창체험관, 마당과 정원을 중심으로 주요 시설이 자리한다(사진=이효태)
강화직물산업의 역사와 소창에 대해 배우는 소창전시관(사진=이효태)
강화직물산업의 역사와 소창에 대해 배우는 소창전시관(사진=이효태)
1960~70년대는 강화직물 산업의 전성기로 강화소창의 명성도 대단했다. 그러나 사람의 손과 발을 대신할 기계가 등장하고, 소창을 대신할 값싼 원료의 대체품이 등장하며 강화에 자리한 대규모 공장과 노동자들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다시금 주목 받는 천연 직물, 소창(사진=이효태)
다시금 주목 받는 천연 직물, 소창(사진=이효태)
소창체험관은 1938년 강화에 문을 연 평화직물의 한옥과 염색공장을 생활문화체험공간으로 재조명한 곳이다. 작은 한옥마을 같기도 한 소창체험관은 소창전시관, 다도관, 소창스탬프체험관, 소창바느질체험관, 직조시연관, 한복체험관·기념품전시관의 주요 시설이 자리한다.
순무 차를 즐긴 다도관(사진=정상미)
순무 차를 즐긴 다도관(사진=정상미)
여염집 규수의 방 같은 다도관에서는 친절한 해설사가 강화의 특산물인 순무를 덖어 만든 구수한 차를 맛보라 내어준다. "소창에 색색의 스탬프를 찍어 나만의 손수건도 가져볼 수 있다며, 무료 체험도 해보시라" 권한다. 밖에서는 한복체험관에서 고려시대 의복을 빌려 입은 어린이들이 이곳저곳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고려시대 의복을 대여해 기념 사진을 남겨본다(사진=이효태)
고려시대 의복을 대여해 기념 사진을 남겨본다(사진=이효태)
천연 직물로서 소창으로 만든 제품들이 다시금 주목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생기가 드리워지는 건, 이렇게 가꾸는 사람들과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산책하듯 방문한 강화 원도심에서의 하루가 알알이 빛난다.

정상미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