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보험공사가 ESG 요소를 예금보험료 산정에 반영하며 제도 혁신에 나섰다. 이는 기후 리스크 등 미래 잠재 위험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고, 금융시장의 지속가능성을 강화하려는 공공기관의 전략적 움직임이다.
[한경ESG] 리딩 기업의 미래 전략 - 예금보험공사 문형욱 예금보험공사 상임이사
문형욱 예금보험공사 상임이사. 사진=이승재 기자
예금보험공사가 올해부터 예금보험료 산정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를 반영한다. 기후 리스크 관리 수준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적용하기 위해 보험료율 제도를 개편한 것이다. 이번 제도 개편은 금융시장이 ESG 대응을 위한 구체적·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출발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환경 부문에서는 금융회사 이사회의 기후 리스크 관리 여부, 중장기 로드맵 수립 여부, 스트레스 테스트 이행 여부 등을 평가하는 방식이 국내 금융시장의 ESG 경영 확산을 위한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형욱 예금보험공사 상임이사는 〈한경ESG〉와의 인터뷰에서 ESG를 예금보험료 산정에 반영하는 것은 “단순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미래 잠재 리스크에 대한 선제적 관리와 금융 안정성 강화를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도 개편을 주도한 문 이사는 “예금보험공사는 기후 위기를 금융시스템 전체 위협으로 인식하고, 대형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기후 리스크 대응 체계를 마련해 보험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등 금융 안정 기구로서의 공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문 이사와의 일문일답.
- 최근 예금보험료율 산정에 ESG 요소를 일부 반영하셨습니다.
“예금보험공사는 3월 20일 예금보험위원회 의결을 통해 차등 보험료율 제도를 개선했습니다. 등급 간 차등 폭과 평가 등급 수를 확대해 기존 5등급에서 7등급으로 늘렸습니다. 또 ESG 관련 항목을 가점 요소로 새롭게 반영해 금융회사의 미래 위험 대응 노력을 평가하고자 했습니다. 이 외에도 최근 이슈화된 유동성 리스크를 반영한 평가지표와 종합금융투자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영업용순자본비율 지표를 추가했으며, 내부통제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해당 항목의 배점을 확대했습니다.”
- 어떤 ESG 요소를 포함했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환경 부문에서는 금융회사의 기후 리스크 관리 활동을 평가했습니다. 이사회 보고 여부, 중장기 로드맵 수립, 스트레스 테스트 이행 여부 등 선제적 노력에 가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차등 평가해 반영했습니다. 사회 부문에서는 경기 순응성을 완화하기 위해 경기 변동에 따른 체계적 차등 보험료율 조정 제도를 저축은행 업권에 도입했습니다. 지배구조 부문에서는 반복되는 금융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내부통제 항목 배점을 확대하고, 내부통제 활동에 대한 별도 평가 항목도 신설했습니다. 이는 미래 잠재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금융회사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 기후 리스크와 관련해 해당 지표를 선정하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기후 리스크를 측정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체계적 로드맵이나 계획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실제로 대비책을 실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됩니다. 또 이러한 계획이나 수단에 대해 경영진이 명확히 인식하고 있어야 회사 전체의 지속가능한 경영 목표가 제대로 달성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경영진과 이사회가 이러한 부분을 이해하고 준비했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점검하게 된 것입니다.”
- 해당 지표는 기후 리스크를 직접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올해는 차등 보험료율제 개편을 통해 기후 리스크 관리 수준을 처음으로 보험료 산정에 반영하는 원년입니다. 금융회사의 수용성을 고려해 초기에는 기후 리스크의 실질적 영향보다는 체계 구축 및 선제적 노력에 대해 가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구체적 기후 리스크나 이에 따른 보험료 스프레드(격차)를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추후 충분한 기후 데이터를 확보해 평가를 정교화하면 온실가스배출량, 금융배출량 등을 토대로 보험료도 차등 산출이 가능할 것입니다.”
- 기후 비용도 보험료 산정에 포함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리라 판단됩니다. 보험료 산정에는 금융회사의 지속가능경영 목표를 평가할 수 있는 ESG 요소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기후 리스크 대응 초기 단계지만, 향후 금융회사의 회계 처리상 나타나는 전환 비용이나 물리적 리스크로 인한 자산 손실 등 구체적 데이터가 확보되면 이를 예금보험료 산정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평가 항목과 지표에 대한 구체적 합의나 컨센서스는 없지만, 앞으로 이러한 세부적 평가 체계를 마련해나갈 예정입니다.”
- 그러기 위해선 금융기관과 기업의 ESG 데이터가 필요할 텐데요. ESG 공시 로드맵은 올해 상반기 중에는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올 상반기 중에는 어렵다고 봅니다. ESG 공시 의무화는 정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금융위원회, 환경부, 산업부, 경제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충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고, 산업 분야별로 ESG 대응 준비 수준이나 전환 비용 확보 능력에도 차이가 있기에 상반기 중 최종 로드맵을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공시 의무화는 언제가 적절하다고 보십니까.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주요 기업과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한 공시 의무화는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유럽연합(EU) 시장을 목표로 하는 기업이라면, EU의 기후 규제에 신속히 대응할수록 경쟁력 확보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조속한 대응이 필수입니다. 다만 상장기업 전체에 공시를 의무화할지, 기업 규모에 따라 차등 적용할지, 또는 특정 산업군부터 우선 도입할지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라 관련 법안 마련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 기후 리스크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요.
“금융권 자산건전성 평가와 보험료 산정에 모두 기후 리스크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예금보험기금이 투입되는 상황, 즉 보험사고가 발생할 경우 금융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형 금융회사가 기후 리스크에 철저히 대비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금융 시대에는 개별 금융회사의 리스크가 매우 빠르게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기에 대형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기후 리스크를 제도적으로 반드시 반영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 좌초자산 평가도 기후 리스크 관리에 중요 현안입니다. 추후 보험료 평가에 반영되리라 보십니까.
“앞으로는 구체적 평가 항목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 관리는 크게 2가지로, 기후변화 대응에 따른 전환 비용(사회적비용 및 투자비용)과 기후 재해로 인한 물리적 손실이 있습니다. 미국 내륙에서 토네이도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 금융회사들이 입는 직접적 손실을 평가하고 보험료 산정 시 반영하는 식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전환 금융 공급도 예금보험공사의 중요한 역할이 되겠네요.
“실제 예금보험기금을 운용할 때 수익성과 함께 ESG 요소, 특히 기후 리스크를 주요 고려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현재 약 17조~18조 원 규모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데, 시장에서 유통되는 채권을 매입할 때도 ESG 평가가 우수한 기업의 채권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방식을 채택합니다. 이는 기금 운용 전략에서 중요한 판단 기준 중 하나입니다. 이와 별도로 저희는 예산을 편성해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사업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금보험공사와 서울보증보험이 각각 1억 원씩 출연해 총 2억 원 규모의 지원 사업을 진행 중인데, 이 과정에서도 기후 리스크 대응 역량이나 친환경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을 우선 선정해 인센티브를 제공합니다.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환경적·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에 플러스 요인을 부여하는 구조입니다.”
정책금융기관이 아닌 데 따른 제약은 없나요.
“맞습니다. 저희는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처럼 기업에 자금을 직접 투입하는 정책금융기관은 아닙니다. 예금보험공사는 예금자의 손실을 보전하거나, 부실 금융회사를 정상화하는 데만 자금을 투입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은 제한되어 있고, 대신 기업은행 등에 저희 기금을 예치해 이자 수익을 조금 낮추는 대신 사회적기업에 대한 대출이 가능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 기후, 전환 금융 공급 실적이 있나요.
“예금보험공사의 출자금융회사인 서울보증보험을 통해 우수 환경 사업체 및 녹색인증 기업 등에 대해 2024년에만 2조9000억 원의 자금을 공급했습니다. ESG 산업 관련 유망 중소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기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외에도 2024년 중소벤처기업진흥채권 및 ESG채권 2조8400억 원을 매입했습니다.”
- 공공기관으로서 차별화된 ESG 경영을 어떻게 추진하고 있나요.
“예금보험공사는 2021년 ESG 위원회를 구성하고, 2023년 이사회 내 ESG 소위원회를 신설해 전문성을 활용해 지속가능경영을 내재화하고 있습니다. 또 전담 조직을 ESG경영부에서 지속경영부로 개편했고, 부서별 ESG 실천 리더 운영 및 뉴스레터를 통해 성과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의 특성상 자원이 제한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회사 및 지자체 등과 협력해 ESG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더불어 ‘예금보험 3.0’이라는 경영철학을 설정해 사전적 부실 예방 중심으로 ESG 경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예금보험 3.0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예금보험공사는 현재 유재훈 사장 취임 직후인 2023년 새로운 경영철학이자 예금보험제도의 미래 발전 방향으로 ‘예금보험 3.0’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기존 금융회사 사후 부실 정리 중심의 ‘예금보험공사 1.0’ 및 ‘예금보험공사 2.0’을 넘어 사전적 부실 예방을 통해 금융 계약자를 더욱 보호하겠다는 방향성을 담고 있습니다. 공사는 이러한 예금보험 3.0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ESG 경영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속가능한 미래를 지향하는 금융 안정 기구’라는 ESG 비전을 수립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매년 ESG 추진 전략을 수립·시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가장 중요한 ESG 경영 현안으로 금융 계약자 보호를 선정했네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2025년 1월 예금보호 한도를 기존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상향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공포되었으며, 2025년 중 시행될 예정입니다. 또한 ‘잘못 보낸 돈 되찾기 서비스’도 지원 한도를 1억 원으로 상향하고 이용자 편의성 제고를 위해 지방 거점의 방문 접수 확대 및 모바일 인증 절차 간소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경제신문의 대한민국 ESG 클럽을 통해 BGF리테일과 ‘잘못 보낸 돈 되찾기 서비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협의 결과 2024년 12월부터 전국 CU편의점을 통해 착오 송금 반환 서비스 관련 동영상을 홍보하는 등 민간과 협업해 수혜자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고령층과 다문화가정 등 금융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금융교육도 추진 예정입니다.”
- 미국에서의 반(反)ESG 흐름이 금융권 전반의 기후 활동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반ESG 흐름은 일시적 현상으로 봅니다.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해도 주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ESG 활동은 계속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이슈인 기후 위기에 미국도 다시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특히 중국과의 경쟁에서 환경 및 기후 문제는 (미국이 갖는) 중요한 전략적 수단이기에 장기적으로 반ESG 흐름이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실제 미국에서 트럼프 정부 이후 ESG 흐름이 후퇴하고 있으나, 주정부 및 민간 차원의 ESG 활동은 지속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 끝으로 한마디.
“예금보험공사는 예금보험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금융회사의 ESG 경영을 유도함으로써 금융시스템 전반에 ESG 기조가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인구구조 변화와 기후 위기 등 금융 환경의 변화 속에서 금융 부문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예금보험공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예금보험공사는 시장원리에 충실한 금융 계약자 보호 기구로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지향하는 금융시장 안정성 유지를 통해 공공기관으로서 사회적책임을 다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