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국고 투입도 고려해야…밸류업, 남은 건 상속세·배당소득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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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형 인터뷰 ①]
"노후보장 시스템에 매년 30조 투입할 수 있나…합의 필요"
"밸류업 정책, 국민의힘 전략팀의 실수" 분석도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연금 개혁을 논의하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간사를 맡게 됐을 때 동료 의원으로부터 이 같은 말을 들었다고 회상했다. 연금 문제는 '손을 안 대는 게 상책'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세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한데다, 결론을 내도 비판만 듣기 십상이어서다.
연금 개혁 뿐만이 아니다. 오 의원은 코스피 지수가 2500 안팎인 상황에서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선대위의 '코스피 5000시대 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기획재정부를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 내놓기도 했다. 부담이 클 수 있는 사안들을 기꺼이 떠안고 있다는 얘기다. 대선 공식 선거운동 개시를 앞둔 지난 9일 오 의원과의 인터뷰를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두 편에 걸쳐 정리한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간사를 맡고 있는데.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삼가 조의를 표한다”고 말하더라. 분명한 합의를 내야 하는데, 잘못하면 결과는커녕 욕만 먹을 수 있는 일이라서 그런 거다. 무엇보다 민주당의 종래 입장에 얽매이지 않고,’제로베이스‘에서 국민의힘은 물론 청년들이 하는 얘기도 더 귀담아들으려고 한다.
여유가 되면 전국을 몇 바퀴 돌면서 많은 분의 얘기를 들으려 했는데, 지금은 물리적으로 상황이 안 되니 선거가 끝나고 다시 돌아다녀 보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더 많이 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달 정도 스터디를 해보니 어떻게 개편하면 좋을지 나름대로 잠정적인 방안도 생각이 났다. 가장 중요한 설득 포인트는 ‘불신’인 것 같더라. 기금이 지속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불신, 그런 것들에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국민연금 기금, 어떻게 개편하겠다는 건가.
'4·1·6 방안'이라는 게 있다.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4%포인트 올리고,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1%(약 26조원)를 국고로 기금에 투입하고, 기금 운용수익률 6%를 달성하자는 내용이다. 우선 보험료율 인상은 해결이 됐다. 기금수익률의 경우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수익률 5.5%도 허상 아니냐”고 지적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지난 3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6%를 이상이었다. 현재 기금운용 수익률 목표치(4.5%)를 6%로 끌어올리는 게 아주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남은 쟁점은 GDP의 1%만큼 국고를 투입하는 부분이다. 보건복지부는 당연히 “땡큐”라는 입장이지만, 기재부는 반대한다. 국고를 투입하더라도 ‘수급자가 돈을 받을 때 주자’는 입장이 강하다. 복지부나 연금 개혁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기금을 유지하기 위해선 지금부터 미리 국고를 투입하자고 해 차이가 있다. 사실 투입할 국고의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도 큰 난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아예 '신연금제도'도 제시했는데, KDI가 구 연금 부채 규모(609조원)를 과소평가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 부분도 살펴볼 만하다.
▲연금 개혁에 대한 미래세대의 불만이 큰데.
국민연금에 대한 국가의 지급보증은 이미 돼 있다. 미래세대의 불만은, “현세대는 보험료율을 13% 정도만 내는데, 내가 내야 할 때는 왜 지금의 두 배씩 내야 하느냐”는 것이다. 실제 2071년이 되면 기금이 고갈돼 보험료율이 28~36%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기초연금은 올해만 하더라도 이미 국고 26조원이 투입된다. 복지부 보고를 보면 25년 뒤인 2050년엔 기초연금에만 국고 150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투입된다. 기초연금 지급액을 늘려야 한다는 논의도 있는 상황에서 '이게 지속이 가능한 구조인가'에 대해 우려가 크다. 결국 국고로 GDP의 1%를 미리 투입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국고 투입을 하지 않으면 해법이 없다.
▲다른 나라도 국고를 투입하나.
한국의 경우 노후보장을 위해 투입하는 국고의 규모가 GDP 대비 3%를 조금 넘는다. 다른 나라는 8.3% 정도로 분석된다. 10%를 넘는 나라도 있다.
지금 한국의 연간 예산이 약 700조원인데, 기초연금을 포함해 노후보장 시스템에 매년 30조원가량을 투입해도 괜찮다고 국민들이 공감해주면 결단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이 과정에서 다른 예산이 줄어드는 만큼 다른 분야의 희생도 따를 것이다.
예산 구조의 변화, 기초연금 수급방식의 변화 같은 다양한 변화가 수반될 것이다. 여야는 물론 청년들도 같이 이 문제를 검토해줘야 한다. 이건 절대 민주당이 ‘쪽수’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기재부와의 합의도 필요하다.
▲코스피 5000시대 위원장도 맡고 있다. 코스피 5000,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나의 목표로서 제시했다.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자는 발상에서 나온 숫자다.
코스피지수가 2000을 넘은 지 20년 정도 됐는데 아직도 2500수준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너무 박스권에 갇혀있는 것 아닌가. 진작에 3000은 넘었어야 했다. 그 기간 한국이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도 아니지 않나.
주가순자산비율(PBR)도 살펴봐야 한다. 지금 코스피 상장회사를 살펴보면 지나치게 저평가돼있다. 통상 PBR이 1보다 낮으면 저평가돼있다고 말하는데, 사실 PBR이 1인 것도 저평가된 것이다. 자산가치와 시장가치가 같다면 기업이 살아있는 게 아니다. 선진 자본시장에서 PBR은 보통 3이 넘어간다. 근데 우리는 0.8~0.9에 불과하다. 재무제표가 신뢰할만하다는 전제로 PBR이 지나치게 낮은 회사는 인수합병(M&A) 대상이 돼야 한다.
일각에서 PBR과 상속세를 연동한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니 내부적으로 난리가 난 대기업도 많다고 들었다. PBR이 0.2~0.3에 불과한 기업도 있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기업가치가 저평가된 공통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면 PBR이 충분히 올라가고, 코스피 3000~4000도 쉽게 갈 수 있다고 봐서 목표치를 5000으로 잡은 것이다.
▲주가지수에는 금리 같은 다양한 요인도 영향을 끼치는데.
코로나19 이후 금리 인상은 모든 나라에서 관찰되는 일반적인 흐름이었다. 한국 자본시장만 특별히 저평가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한다.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나 의사결정 상 불투명성이나 낮은 PBR은 지배주주가 의도적으로 주가를 누르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하자는 논의는 과거부터 있었다. 문제는 옛날과 지금의 원인이 다르다는 점이다. 과거엔 남북관계나 전쟁위험이 한국 주식시장의 고질적인 저평가 요인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가장 최근에는 12·3 비상계엄의 영향이 컸고, 이와 별개로 LG에너지솔루션이나 삼성물산, 고려아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두산밥캣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기업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상 문제가 크다. 적어도 이런 부분은 제도적으로 풀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회사의 본질적인 가치를 상승시키는 것은 기업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다만 정책적으로 도울 부분은 돕자는 것이다. 한국은 20년 전 대기업 순위가 지금도 그대로다. 미국은 10년마다 바뀐다. 새로운 혁신기업이 시장에서 그에 걸맞은 평가를 받으니까 그런 거다. 기업이 성장하는 만큼 투자자들도 같이 성장한다. 한국은 그게 안 되는 게 문제다.
▲PBR을 높일 유인책은 무엇인가. 이재명 후보는 세제 혜택도 말하는데.
그게 ‘메인’ 정책일지는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감세 반대론자인데, 감세든지 증세든지 모든 시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옳은 정책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감세가 적절한 때는 아니라고 본다.
세제 혜택은 '밸류업 정책'의 일환인데, 사실 일본이 1990년대부터 잃어버린 30년을 거치면서 “우리도 뭐라도 해보자”면서 내놓은 정책이 '밸류업'이다. 일본이 2013년 정도 밸류업 정책을 펼치면서 여러 시도를 했고, 수년간 일정 수준의 성과도 거뒀기 때문에 지난 윤석열 정부도 이걸 들여왔다.
일본의 밸류업 정책은 ‘투자자 중심의 경영’과 ‘배당’이었다. '투자자 중심'이란 자본을 재배분하고 구조조정을 할 때, 자본을 고정자본으로 할지 유동자본으로 할지를 고민할 때, 투자자 입장을 고려하자는 의미다. 투자자 입장에서 주식을 갖고 있을 때와 은행에 묵혀둘 때 수익률을 비교하면 기업투자가 유리하도록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주식 가치를 올리거나 배당을 늘리는 걸 중시하는 경영 관행을 만들자는 게 깔려있었던 거다.
한국은 어떤가. 상법 개정안에서 논란이 됐던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는 윤석열 정부에서 처음에 하려다 엎었다. 애초에 국민의힘이 주도적으로 하면 되는 거였는데, 지난해 9월쯤 민주당이 하려고 나서니까 국민의힘에서 내분이 나고선 주도권을 놓친 것 같다. 아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내심 억울할 것이다. 자기들이 먼저 내놓은 의제인데 민주당이 선점한 것처럼 보이니까…. 결과적으로 남은 건 결국 상속세감면과 배당 분리과세뿐이다.
정부와 국민의힘이 맨 처음 밸류업 정책을 띄울 때 가졌던 문제의식대로 했다면 본인들에게 유리했을 텐데, 일관성을 잃다가 주도권을 놓쳤다. 기재부도 입장이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국민의힘 내부 전략팀의 실수라고 본다.
이광식 기자 bumeran@wvnryckg.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