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의 재테크 수단으로 통하는 ‘정기예금’ 계좌가 2년 새 1000만 계좌 이상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곤두박질치는 예금 금리에 실망한 고객이 대거 계좌를 해지해서다. 은행 계좌를 떠난 자금은 해외 주식, 암호화폐 등 다른 대체투자 수단을 찾아 빠르게 이동한 것으로 분석됐다. 금융권에선 본격적인 금리 하락기에 접어드는 만큼 ‘국민통장’으로 불리던 정기예금의 쇠락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사라지는 저금 문화

1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은행을 통해 가입한 정기예금은 지난해 말 기준 총 2314만7000계좌다. 정기예금 인기가 빠르게 식으며 작년에 해지된 정기예금만 총 600만 계좌에 달한다.

그간 정기예금 계좌는 줄곧 증가하는 추세였다. 원금이 보장되는 예금을 통해 꼬박꼬박 이자를 받는 ‘예테크’(예금+재테크)가 일상에 자리 잡으면서다. 한은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2년 정기예금은 총 851만3000계좌였다. 이후 9년 만인 2011년 처음으로 1000만 계좌를 넘어섰다. 2022년엔 3346만8000계좌로 폭증해 20년간 정기예금 계좌 증가 폭은 293%에 달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3년 전만 해도 정기예금은 집마다 두세 개씩 가입해 안정적으로 자산을 불리는 수단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금리 인하, 대체투자 수단 확대, 인구 감소 등으로 정기예금의 매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줄줄이 정기예금을 해지하기 시작한 것은 2023년부터다. 당시 한 해에만 437만7000계좌가 사라졌다. 이후 쇠락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최근 2년 새 1000만 계좌 넘는 정기예금이 자취를 감췄다. 매일 전국 곳곳에서 2만7000여 개 계좌가 해지되는 셈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통상 금리가 떨어지면 정기예금을 해지하는 추세가 이어졌다”면서도 “정기예금 금리가 연 2%대 중반으로 내려온 상황에서 대출 억제 정책을 펴고 있는 은행 입장에선 적극적으로 정기예금을 판매할 동력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예·적금 금리 연 1% 시대 오나

사라진 정기예금 중 다수는 1억원 이하 소액 계좌였다. 한은에 따르면 최근 2년간 해지된 1억원 이하 정기예금은 1045만 계좌다. 저금리에 실망한 일반 투자자가 예금을 깨고 다른 곳으로 자금을 옮겼다는 얘기다.

업계에선 은행을 이탈한 자금이 주식, 암호화폐 등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 투자자가 순매수한 해외주식은 총 152억8803만달러(약 21조원)어치다. 작년 같은 기간(58억2457만달러) 대비 162% 폭증했다.

투자 열풍에 은행이 보유한 투자 대기 자금도 대거 쪼그라들었다. 지난달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629조4038억원으로 전달보다 20조7203억원 줄었다. 지난해 7월(29조1395억원) 후 월간 기준 가장 큰 금액이 요구불예금에서 이탈했다.

업계에선 당분간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기가 본격화하며 국내 주요 시중은행이 예·적금 금리를 끝없이 내리고 있어서다. 우리은행은 13일부터 ‘우리 첫 거래 우대 정기예금’ 금리를 0.2%포인트 낮추기로 했다. 이에 따라 1년 만기 기본금리는 연 2.0%에서 연 1.8%로 떨어졌다. 하나은행도 같은 날 예·적금 기본금리를 최대 0.3%포인트 인하했다. 어느새 예·적금 금리가 연 1%대에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대표 예금상품 기본금리(1년 만기 기준)가 연 2.15~2.65%로 낮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고금리 시대가 다시 찾아오지 않는 이상 정기예금 감소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재원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