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첸 밥솥 쓰다가 '화재'…제품 결함 인정한 판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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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화재로 8900만원 피해
화재 원인은 '쿠첸 밥솥 전원선'
소방당국, 미확인 단락 화재 추정
法, 인적 부주의 부정…결함 인정
화재 원인은 '쿠첸 밥솥 전원선'
소방당국, 미확인 단락 화재 추정
法, 인적 부주의 부정…결함 인정

소방당국, 아파트 화재에 "쿠첸 밥솥서 불"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5-2민사부(재판장 염기창)는 메리츠화재가 쿠첸을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지난달 16일 쿠첸이 메리츠화재에 356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아파트 화재로 발생한 재산피해 중 40%는 쿠첸에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쿠첸이 상고하지 않으면서 이 판결은 지난 9일 확정됐다. 쿠첸 전기밥솥의 제품 결함으로 화재가 발생한 사실이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인정된 셈이다.
2022년 12월 경기 남양주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약 8900만원에 이르는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메리츠화재는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와 체결한 주택화재보험계약에 따라 재산피해액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했다. 이어 전기밥솥 제품 결함으로 불이 난 것이라면서 쿠첸이 보험금 액수만큼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재판 과정에선 화재 원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관할 소방서는 전기밥솥을 화재 발생 원인으로 지목했다. 전기밥솥과 보조부엌에 함께 있던 에어프라이기, 전자레인지 등은 발화 원인에서 배제했다. 방화 가능성이나 자연적 요인은 화재 원인으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사용자도 전기밥솥을 정상적으로 사용했다고 봤다.
그러면서 "전기밥솥 전원선의 미확인 단락에 의해 화재가 발생했다고 추정한다"고 명시했다. 전기밥솥 전원선에서 전기가 전선을 따라 정해진 회로로 흘러야 하지만, 엉뚱한 지점으로 흘러 불이 났다는 얘기다.
"전원선도 제조사의 영역"…法, 쿠첸 결함 '인정'
법원도 전기밥솥 본체와 콘센트 사이의 전원선에 단락이 생기면서 불이 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어 전원선도 쿠첸이 책임져야 할 영역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1심은 "소비자로선 전원선을 콘셉트에 연결해 사용할 뿐, 전원선 내부를 분해하거나 본체에 결합돼 있는 전원선을 임의로 교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전기밥솥의 전원선은 본체와 마찬가지로 쿠첸의 배타적 지배 하에 있는 영역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용자가 전기밥솥을 부주의하게 사용한 정황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1심은 "전원선 단락이 전원선 피복의 눌림·꺾임 등 외적 손상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없고 사용자가 전원선을 눌렀다거나 꺾이게 했다는 등 사용상의 부주의가 있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전원선 위치나 상태가 거의 변경되지 않고 이용된 것으로 보여 사용자가 전원선을 꽂았다 빼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손상이 발생할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고 했다.
사용자가 이사를 하던 과정에서 전원선이 꺾이거나 눌렸을 수 있다는 주장은 합리적 추정을 벗어난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기밥솥이 올려져 있던 선반 틈새에 전원선이 눌렸을 가능성도 배제했다.
1심은 "화재는 쿠첸의 배타적 지배 하에 있는 전기밥솥이 정상적 용법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발생했고 화재가 전기밥솥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 것임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전기밥솥에 결함이 존재하고 그 결함으로 화재가 발생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쿠첸 책임 40%로 제한…"사용자도 집 비워"
다만 쿠첸의 책임 범위는 메리츠화재가 요구한 손해배상액 중 50%만 인정했다. 전기밥솥 외부에 노출된 전원코드에서 확인되지 않는 단락이 화재 원인으로 지목됐을 뿐, 단락이 발생한 원인과 구체적 발화 경위가 100%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쿠첸에 유리하게 작용했다.사용자가 화재 당시 집을 비워 화재를 신속하게 진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도 쿠첸의 책임을 덜어주는 근거가 됐다. 1심은 쿠첸이 메리츠화재가 지급한 보험금 중 50%인 4445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쿠첸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도 사용자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은 인정되지 않았다. 전기밥솥 전원선에서 발생한 미확인 단락이 화재 원인이 됐다는 판단은 1심과 동일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용자가 전기밥솥 사용설명서의 주의사항을 위반해 전원선을 가공하는 등 내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했다고 볼 만한 반증도 전혀 없다"며 "이사 이후 화재가 발생할 때까지 5개월간 아무런 사고 없이 작동해 전원선이 이사 과정에서 손상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쿠첸의 책임 비율은 1심보다 낮춘 40%로 한정했다. 사용자가 집을 비워 초기 진화를 하지 못한 책임도 있는 데다 제품 내부 인쇄회로기판(PCB) 등 주요 구성품에 화재 원인이 될 만한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항소심 재판부는 "쿠첸이 처음부터 하자가 매우 중대한 제품을 공급했다고 보이지는 않고 쿠첸이 제조한 동종 전기밥솥에서 유사한 다른 화재가 발생했다는 사정은 없는 점 등을 참작해 쿠첸의 책임을 40%로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잊을만 하면 밥솥서 '불'…쿠첸, 자발적 리콜도
쿠첸 밥솥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은 종전에도 있었다.쿠첸은 2017년 한 소비자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밥솥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고 폭로하자 제품을 회수하고 위로금을 건네는 조건으로 합의한 바 있다. 당시 합의 내용 중엔 인터넷 게시·방송사 취재협조 금지 등이 포함돼 비판 받기도 했다.
앞선 2016년엔 쿠첸 밥솥을 쓰다 화재가 발생해 피해를 입은 소비자에게 회사가 638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쿠첸은 지난해 과거 자사 전기밥솥 제품 중 일부 모델에서 결함이 발견됐다면서 자발적 리콜 조치를 단행했다. 당시 회사 측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하나의 제품도 리콜 조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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