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협상의 달인과 협상하는 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과거 부동산개발업자와 토크쇼 진행자 시절 그리고 1기 재임기간 내내 자기가 협상의 달인이라고, 그래서 무능한 민주당과 기존 정치인이 해결하지 못한 일들을 단 하루 만에 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또 세계 경제를 심리적 공황 상태까지 몰고 간 무원칙의 상호관세 부과 시행을 90일간 미뤄놓고, 150여 개국과 협상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놀라운 선물을 하겠다고 여전히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협상의 달인이라고 자부하는 트럼프는 무역전쟁을 선포한 이후 오히려 쫓기는 처지가 됐다. 무역전쟁 선포 이후 미국 경제가 물가상승을 동반한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투자자 의견이 지난 1월 20%에서 최근 45%로 급증했고,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오르며 물가 불안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이처럼 경제 불안이 심화하자 트럼프는 상황 반전을 위해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 교역 상대국과의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하기 위해 구걸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즉 트럼프가 감동할 선물을 먼저 들고 와서 협상에 임하는 국가들이 놀라운 이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란 회유 메시지를 내고 있다. 트럼프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는 일본이 가장 먼저 협상에 임하면서 그 결과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여기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존 내시가 제시한 협상의 기본 이론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너무나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이 이론에 따르면 협상의 결과는 협상력에 따라 결정된다. 더 큰 협상력을 가진 나라는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손해가 작기 때문에 협상을 서두르지 않으며, 그 결과 협상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한다. 협상은 당장의 합의보다 상대보다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전략적 인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트럼프는 그의 생애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위기에 처한 듯하다.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워 두 차례나 대통령에 당선된 경험에 기대 3선까지 노리며 강력한 관세전쟁을 밀어붙이다가 경기 침체와 지지율 급락이라는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런 정치적 위기에서 트럼프가 믿고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미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이 자발적으로 선물 보따리를 들고 와서 트럼프와 미국 유권자를 감동시키고, 그에 따라 자신의 지지율을 회복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이런 절박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중국, 유럽연합(EU), 캐나다, 멕시코 등은 백악관에 먼저 선물 보따리를 들고 갈 유인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극우 유권자에게 의존하는 일본 자민당 정부와 우리나라 일부 극우 정치인이 위기에 빠진 트럼프를 도와줄 선물 보따리 마련에 적극적인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트럼프의 환심을 사는 것이 양국 간 외교적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 듯하다. 하지만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우리 경제의 장기적 안정과 성장 전략을 고려한다면 위기에 처한 트럼프와의 협상 전략은 근본적으로 다시 세워야 한다.

가장 어리석은 전략은 협상 조기 타결 자체를 목표로 하는 성급한 접근이다. 이 때문에 세계 주요국은 트럼프의 비위를 먼저 맞추려 나선 일본이 잘못된 선례를 남길까 우려하고 있다. 경제적 자해 행위에 가까운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시작도 하기 전에 미국 경제를 침체의 길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힘을 빠르게 잃어가는 트럼프의 관세 협박에 가장 먼저 무릎을 꿇으려는 극우 정치인들은 경제학 입문서에 나오는 존 내시의 협상 이론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