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K방산·K조선 앞에 도사린 복병
캐나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51번째 주 편입 논란 이후 군사력 증강에 눈을 떴다. 지난 3월 북극권 배치용으로 지평선 너머 3000㎞까지 감시할 수 있는 첨단 레이더 장비를 6조원에 호주에서 도입하기로 했다. 캐나다 최대 TV 방송 CBC는 며칠 전 한국의 방산 실력에 대한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K방산의 대표 상품인 K-9 자주포와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의 잠수함 건조 능력 등을 소개했다. 기술력과 가성비, 짧은 리드 타임과 납기 준수, 유지·보수 능력까지 갖춘 ‘방산 명품’으로 조명받았다. CBC는 방산 신흥 강국 한국을 “민주주의의 새로운 무기고”라고 표현했다.

한국은 자유 진영의 새 무기고는 물론 세계 최고의 제해력을 가진 미국의 조선 독·함정 정비창으로도 부상하고 있다. 미 해군의 구매·획득 업무를 담당하는 해군성의 존 펠런 장관이 얼마 전 방한해 양국 간 조선 협력 방안을 점검하고 돌아갔다. 트럼프는 ‘미국 조선업 재건’ 특명을 부여한 펠런 장관에게 인사청문회가 있던 날 새벽에 녹슨 함선 사진을 보내고, 대화할 때마다 ‘조선, 조선’을 주입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선박 건조 능력이 전 세계 건조량의 0.2%에 불과할 정도로 조선업 생태계가 붕괴했다. 중국의 건조 능력은 미국의 233배에 달한다. 해군력의 지표 중 하나인 함정 수에서 2000년만 해도 미국 318척, 중국 110척으로 미국이 앞섰으나 지금은 297 대 370척으로 크게 역전됐다. 미국은 해군력 부활을 위해 향후 30년간 360여 척의 군함을 구매할 계획이다. 현재 조선업 판도를 볼 때 당분간 한국과 일본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고, 특히 한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가 필리핀에 M16 탄환을 판매한 게 1975년이니, 방산 수출을 시작한 지 딱 50년이 됐다. 그랬던 나라가 자유세계의 무기고라는 찬사를 듣고, 미국 조선 재건의 제1 파트너로 몸값을 인정받고 있으니 ‘국뽕’ 차오르는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선 과제도 적잖다.

조선업이 중국의 국가적 물량 공세에 밀리지 않으려면 규모의 경제로 대응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기업만으론 설비 확장 리스크를 떠안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의 재정·제도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무기 구매 대금 파이낸싱이 상례화된 방산 경쟁력을 위해선 수출 금융 규모를 지속해서 확대해야 한다. 방산이나 조선이나 제조 주체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국제 경쟁은 ‘국가대항전’ 양상을 띠고 있어 공격적인 정부 정책이 절실하다. K방산, K조선의 핵심 경쟁력인 ‘속도전’의 초격차를 위해 설계 및 연구개발(R&D) 인력에 한해서라도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를 둬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 지원과는 별개로 보다 근본적 리스크가 상존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대선에 따라 만일 친중 정권이 들어설 경우 어떤 여파가 미칠지 속단하기 어렵다. 미국이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에 따라 군용 선박과 구성 요소의 외국 조선소 건조를 금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보안 및 군사 기밀 유출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다. 미국 영토를 모함으로 하는 해군 선박의 외국 조선소 유지·정비·보수(MRO)를 금지하는 관련 규정 또한 같은 맥락이다.

미국이 해외 MRO가 가능한 군함 정비를 한국에 맡기는 것은 동맹으로서 신뢰에 바탕을 둔 것인데 친중 정부가 들어서면 워싱턴 조야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불투명하다. 동맹국 조선소에 한해 군함 건조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보다 한 차원 높은 혈맹 관계인 일본과의 협력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사드 배치 군사기밀을 중국 대사관 무관에게 사전 브리핑해 준 문재인 정권보다 더 친중 성향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해 경찰에 적발된 해외 기술 유출 사례 25건 중 중국으로 흘러간 게 18건, 그중 국가 핵심 기술 유출이 10건이나 되는데도 외국인을 간첩으로 처벌하는 간첩법 개정안은 민주당의 미온적 태도로 표류해 있다. K 방산, K 조선이 100년에 한 번 올까 싶은 호기를 맞았지만, 그 앞길에는 간단치 않은 복병 또한 도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