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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음식점을 찾아내는 미쉐린 가이드가 한국에 첫선을 보인 2016년 말. 서울 한복판 작은 레스토랑에서 젊은 셰프가 미쉐린 ‘별’을 받았다. 만 서른 살의 이충후 셰프가 운영하는 제로콤플렉스란 모던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국내 미쉐린 스타 셰프 가운데 가장 젊었고 그래서 더 과감하고 다양한 시도를 한 것이 좋은 평가로 이어졌다. 그는 요리에 쓰이는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해 전국 농부뿐 아니라 블로그를 뒤져 일반 가정집까지 찾아다녔다. 고급 레스토랑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스테인리스스틸 소재를 실내 인테리어에 적극 활용했다.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요리를 고집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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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0년. 불혹의 이 셰프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로 했다. 서울 반얀트리클럽앤스파 내 레스토랑 ‘페스타 바이 충후’를 맡으면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쉐린 가이드 3스타에 빛나는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가 운영하던 곳이다. 강 셰프는 올해 처음 3스타를 거머쥔 뒤 새로운 도전을 위해 떠났다. 그리고 한국의 대표 파인다이닝 명맥을 잇는 후임자로 이 셰프를 지목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미쉐린 별을 달았던 셰프가 가장 높은 별을 받은 셰프의 뒤를 잇는 것이다. 이 셰프는 “기존보다 더 실험적이고 더 밝은 요리를 내놓겠다”고 했다.

“더 젊고 유쾌한 요리”

이 셰프는 “공간과 음식의 조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음식을 상상한 뒤 이에 맞는 공간을 찾아다녔다. 이런 식으로 10년간 자신만의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이번엔 반대다. 이미 정해진 공간에 맞춰 요리를 구상해야 했다. 그간의 철학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과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겹쳤다. 결국 도전 쪽으로 기울었다. 이 셰프는 “공간이 호텔이라는 점에서 화려한 부분도 있지만 그 안에서 절제된 조화를 찾아야 했다”며 “튀는 요리보다는 공간과 어울리는 톤을 찾느라 고민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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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페스타 바이 충후가 기존 제로콤플렉스보다 훨씬 채광이 좋아 더 밝고 발랄한 느낌을 요리에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제로콤플렉스가 성숙하고 중후한 매력을 보여주는 곳이라면 여기선 더 실험적이고 밝은 분위기를 극대화하고 싶었다”고 했다.

고민 끝에 내놓은 메뉴는 하나같이 발랄하고 상큼한 느낌을 극대화한 것이다. 대표 메뉴부터 그렇다. 메밀 갈레트에 갑오징어, 산지에서 들여온 제철 허브를 얹은 요리를 메인으로 내놓는다. “갈레트 위에는 새콤한 허브 드레싱이 올라가는데 레몬이나 식초가 아니라 허브 자체에서 오는 산미를 강조했다”고 했다.

또 다른 대표 메뉴인 대구 요리는 생선을 아주 가볍게 익혀 쫀득한 식감을 살렸다. 대구 껍질에서 추출한 젤라틴으로 만든 마요네즈풍 소스를 곁들여 “흰살생선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경험을 주고자 했다. 디저트는 쫀득한 식감의 이탈리안 머랭 속에 요구르트 아이스크림과 자몽잼 그리고 후추를 넣었다. “단맛 끝에 후추가 맴돌면서 시트러스와 어우러지는 그 느낌, 그게 기억에 남기를 바란다”고 이 셰프는 말했다.

안성재 셰프와 산지 탐험

이 셰프는 메인 재료를 직접 들여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과거 경기 여주에 있는 농부와 매주 만나며 3년을 거래했다”며 “맛이 없다 싶으면 농부가 아예 주지도 않는 식자재를 가장 믿는다”고 했다.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방영해 큰 인기를 끈 ‘흑백요리사’의 안성재 셰프와도 산지 재료를 찾다가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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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종종 만나 식자재 정보를 공유하고, 음식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눈다. 이 셰프는 여전히 특정 농부들과 협업하며 허브와 꽃을 직접 받아 쓴다. 블로그나 개인 SNS를 검색해 식자재를 찾은 경험도 많다. “딱총나무꽃을 찾다가 한 블로거에게 연락해 분양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의 지론은 이렇다.

“요리사든 농부든 결국 경험치입니다. 토마토를 키운다면 프랑스나 일본의 맛있는 토마토를 먹어본 경험이 있어야 그 기준을 알 수 있는 거죠. 이런 경험 많은 농부를 찾아다니는 겁니다.”

“다이닝 선택 폭 넓어져”

미쉐린 스타를 처음 받을 땐 ‘별’을 따로 의식하진 않았다. 하지만 해마다 한 번씩 평가받는다는 것이 어느덧 당연해졌고, 평가가 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다. 그래서 요즘 그는 꿈을 명확히 했다. 미쉐린 가이드 최정상인 3스타를 받는 것이다. 안성재 강민구 등 주변에 ‘친한 형’들이 3스타 셰프라 그런지, 이 경로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반얀트리 새 이 뜬다…"더 밝고 실험적인 맛 선보일 것"
그는 한국의 파인다이닝 시장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이 셰프는 “좋은 레스토랑에 가면 한 끼에 수십만원을 받으니 ‘많이 남기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미쉐린 별이 더 많을수록 레스토랑에서 남는 게 점점 줄어든다”고 했다. 사람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하기 위해 더 좋은 식재료, 더 수준 높은 직원들, 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파인다이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고맙다고 했다. 사람들의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더 다양한 가격대와 요리를 셰프들이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100만원짜리 다이닝도 있을 수 있어야 한다”며 “소비자가 다이닝 경험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구조가 이 산업을 더 키우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의 목표는 ‘이충후 스타일’을 구축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이것은 이충후 셰프의 요리란 점을 알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 유학 시절 다른 책에서 본 요리들이 같은 셰프의 것이라는 걸 우연히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며 “요리 하나만 봐도 ‘이건 이충후 스타일이다’라고 느끼게 하겠다”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