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개편 없으면 버스기사 인건비 3천억 늘어"
입력
수정
지면A1
서울시, 노조에 협상 재차 촉구법정 정년 연장과 주 4.5일제 도입이 6·3 대선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지만 경영계가 전제 조건으로 제시해온 임금체계 개편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임금체계 개편은 지난해 12월 대법원의 통상임금 관련 판결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하지만 노동계의 반대는 물론 경직된 노동법제가 제도 개편 논의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대선에서도 임금체계 논의 실종
이런 상황에도 지난 18일 대선 후보 TV 토론과 최근 각 후보가 내놓은 10대 공약에 임금체계 개편 내용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월급·수당 다 오르는데 임금체계 왜 바꿔"…꽃놀이패 쥔 노조
대법 '통상임금 판결' 후폭풍…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뭐길래
정치권에선 60세 이상 근로자의 ‘계속 고용’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법적 정년을 연장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하지만 경영계는 현재의 호봉제(연공급제)를 유지한 채 정년을 연장하는 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계속 오르는 구조를 유지하면서 정년이 연장되면 인건비가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이는 청년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민주당이 도입하겠다는 ‘주 4일제’도 마찬가지다. 근로시간 유연화나 직무성과급제 도입 등으로 생산성을 제고하지 않으면 인건비만 늘고 기업 경쟁력은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임금체계 개편 발목 잡는 경직된 노동법
임금체계 개편, 퇴직 후 재고용제 도입 등 임금 조정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업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자 과반수 또는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유연 근무제 도입 등 근로시간제 개편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상 임금·근로시간 조정권은 노조가 쥐고 있고, 노조 동의 없이 기업은 어떤 유연화 시도도 할 수 없는 구조다.10여년 전인 2016년 법적 정년을 60세로 연장했을 때도 이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로 임금조정 방안은 제도화되지 못했고 임금피크제 도입만 권고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후 기업들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자 노동계가 ‘과반수 근로자 동의 없이 시행됐다’며 줄소송에 나섰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 시내버스 사업의 누적 부채가 1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다는 전제 하에 수립된 기존 임금체계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노조는 아쉬울 게 없는 상황이다. 바뀐 판례에 따라 인상된 임금을 받는 것은 당연하며 수당 체계를 조정하려는 시도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이 단순한 지자체 노사 갈등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 대책없는 정년연장 추진
법원도 과거엔 “경영상 필요가 충분하고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 경우 노조 동의 없이도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다”는 법리를 통해 기업의 숨통을 틔워줬다. 하지만 지난 2023년 대법원은 해당 법리를 폐기했다. 대법원은 2013년 통상임금 판결 당시만 해도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과거 노사 합의를 무시한 통상임금 소송에 제동을 걸었지만, 최근에는 이런 주장이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이에 따라 경영계는 정치권의 무책임한 정년연장과 주4일제 추진에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법과 제도에 따라 성실히 임금체계를 설계했어도, 하루 아침에 바뀌는 정부 정책이나 판례 변화에 따라 예기치 못한 추가 비용 등 충격이 발생해도 보호해 줄 아무런 완충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년연장이나 주4일제를 도입하려면 임금·근로시간의 합리적 조정 방안부터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용희/이호기/오유림 기자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임금체계와 근로시간 등이 담긴 회사 내규인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조, 그런 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94조 1항 단서 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