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페어는 정말 많은 파트너가 함께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혼자서 아트페어를 만들 수는 없다. 아트페어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만들어가는 복합적인 행사다. 각 파트너의 역할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만 성공적인 아트페어가 탄생할 수 있다.
키아프와 화랑미술제를 합쳐 15회의 아트페어를 개최하며 경력이 쌓인 나는, 후배들이 업무를 지연시키는 모습을 볼 때면 “너희가 일주일씩 잡고 있는 일도 내가 하면 반나절이면 끝난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후 다른 아트페어에서 혼자 너무 많은 업무를 맡아 진행하면서, 동료들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다행히 이전에 함께했던 파트너사들이 도와준 덕분에 행사를 무사히 개최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팀워크와 파트너사의 중요성을 다시금 배우게 되었다. 아트페어는 혼자서는 절대 완성할 수 없는 작업이며, 각자의 전문성이 모여야만 비로소 완벽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다양한 파트너들은 저마다의 성격에 따라 시설 장치 설치 업체, 디자인·옥외광고물 설치업체, 현장 인력 운영 업체, 입·퇴장 관리 및 입장권 초대권 발송업체, F&B 파트너, 운송·설치사, 파트너 호텔, 도슨트 업체, 보안·경비 업체, 보험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아트페어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여행사, 사진·영상 촬영 및 동영상 송출 업체 등이 함께 한다.
아트페어를 함께 만들어가는 여러 파트너사의 역할을 살펴보자.
시설 장치 설치 업체
시설 장치 설치 업체는 아트페어의 물리적 공간을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이들은 전시 부스, 가벽, 조명, 그리고 기타 필요한 장비를 설치하여 아트페어가 열릴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한다.
그들의 전문적인 기술과 경험이 없다면, 아트페어는 문을 열 수도 없다. 단순히 가벽을 설치하고, 조명을 달아주는 업체가 아니라, 현장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플로어 플랜의 문제점을 사전에 파악하여 주최측에 알리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현장 조성을 개선하는 어드바이저 역할도 한다.
디자인·옥외광고물 설치업체는 아트페어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파트너다. 이들은 아트페어의 브랜드 이미지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창의적이고 눈에 띄는 디자인물과 광고물을 제작하고 설치한다.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디자인물과 옥외광고물은 아트페어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들 역시 현장 설치에 대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디자인 시안과 실제 설치 환경의 차이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확인하여 현장에서 재출력으로 인한 추가 비용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현장 인력 운영은 아트페어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들은 관람객의 안내, 인포데스크 및 서비스 포인트 운영, 그리고 다양한 현장 업무를 담당하여 아트페어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다. 현장 인력은 단순히 행사를 위해 고용한 단기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현장에서 고객을 가장 먼저 대하는 아트페어의 얼굴이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쓰는 가장 큰 조력자이기도 하다. 주최측 직원들이 아무리 일당백이어도 넓은 전시장을 동시에 커버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을 배치해 운영한다.
현장 스태프들이 원활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현장 곳곳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주최측은 철저한 교육 자료를 마련하고, 사전 교육을 통해 행사 전반을 충분히 이해한 후 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거에는 주최측이 직접 아르바이트를 모집하고 교육하여 진행한 적도 있으나, 최근에는 아트페어 규모가 커지면서 현장 인력 운 전문 업체를 통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입퇴장 관리 및 입장권·초대권 발송 업체
입퇴장 관리와 초대권 발송은 아트페어의 보안과 관람객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관람객의 흐름을 원활하게 조절하고, 초대권을 통해 VIP 관람객을 관리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실물 초대장을 발송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모바일 초대권으로 바뀌었다. 모바일 초대권이 익숙하지 않은 갤러리와 고객들이 많아 변화 과정이 쉽지 않았으나, 지금은 대부분의 아트페어가 모바일 초대권을 통해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모바일로 초대권 도입으로 관람객 DB 관리와 입퇴장 인원수 파악이 보다 정확해졌다. 업체들은 이를 바탕으로 관람객의 성별, 연령대, 방문 시간대 등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체계적인 관람객 관리를 지원한다.
F&B 파트너는 아트페어의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음료와 음식을 제공하여, 아트페어를 방문하는 이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돕는다. 좋은 음식과 음료는 관람객의 만족도를 높이고, 아트페어의 전반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향상시킨다.
F&B 파트너를 선정하는 과정은 아트페어의 방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트페어 이미지에 맞는 트랜디한 F&B 업체와 협력해보기도 하고, 유명 프랜차이즈와도 협력해보았다. 각각에는 일장일단이 있었다. 과거에는 유명하지 않았지만, 아트페어 참가를 계기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성장한 업체들도 많다. FELT나 크레마 디 몬타냐, 아이스크림 소사이어티, 더치랩 등은 아트페어에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이후 유명 백화점에 입점하거나, 대형 매장을 오픈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유명 프랜차이즈인 투썸플레이스, 폴바셋, 경복궁을 비롯한 업체와 함께하였을 때는, 고객에게는 익숙하고 편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으며, 브랜드에게는 아트페어를 통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F&B 파트너와의 협력은 단순한 수익 창출이 아닌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송·설치사는 아트페어의 작품과 장비를 안전하게 운송하고 설치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들은 작품이 손상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다루며, 설치 과정에서도 전문성을 발휘한다.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아트페어는 텅 빈 가벽으로 전시를 열어야 할 것이다.
특히 해외 갤러리의 참여가 많은 경우에 작품의 통관, 현장에서의 작품 설치·교체·철수, 아트페어 종료 후 판매된 작품의 배송까지 운송·설치사의 업무가 상당히 많다. 해외 갤러리는 이러한 업무를 전담할 운송사에 대한 정보를 주최측에 요청하기 때문에, 주최측은 공식 운송사를 선정하고 참가 갤러리에게 해당 정보를 제공한다.
공식 운송사의 업무 진행이 수월하지 못한 경우, 참가갤러리들이 주최 측에 컴플레인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선정 과정에서 업체의 역량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검증 항목으로는 크레이트(square)당 견적, 국가별 운송비, 작품 보관이 가능한 전문 스토리지 확보 여부 등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파트너 호텔
파트너 호텔은 아트페어에 참여하는 갤러리스트, 아티스트, 방문 VIP 등 관계자들에게 편안한 숙소를 제공한다. 아트페어와 협력하여 특별 패키지나 할인 혜택을 제공하여, 관계자와 관람객이 보다 편리하게 아트페어를 방문할 수 있도록 돕는다. 좋은 파트너 호텔은 아트페어의 전반적인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국제 아트페어인 경우 해외 갤러리 참가자와 해외 VIP의 수가 많기 때문에, 여러 개의 파트너 호텔을 확보해두어야 한다. 특히, 같은 시기에 국내에서 다른 주요 국제 행사가 열리는 경우, 호텔 예약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미리 호텔과 협의하여 객실을 확보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파트너 호텔의 연회장을 활용해 웰컴 드링크 파티, VIP 파티 등을 진행하기도 하며, VIP 대상 파티에서는 호텔의 출장 케이터링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도슨트 업체
도슨트 업체는 아트페어의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과 해설을 제공하여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관람객들에게 작품의 배경과 의미를 전달함으로써 아트페어의 가치를 높인다. 도슨트의 설명 덕분에 관람객을 작품을 더욱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미술관의 일반적인 도슨트와 아트페어 도슨트는 차이가 있다. 미술관 도슨트는 장기간 동일한 작품을 전시하기 때문에 깊이 있는 설명과 다양한 에피소드를 알려줄 수 있다. 반면, 아트페어는 4~5일 동안 진행되며, 참가 갤러리와 출품된 작품이 많아 모든 작품을 상세히 소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또한, 부스 크기가 갤러리마다 다르고, 한 부스에 동시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므로, 도슨트가 미술관처럼 다수의 관람객을 한 번에 안내하기 어렵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여 도슨트 운영 시 시간대별로 인원을 제한하고, 동선을 나누어 한 부스에 여러 도슨트가 동시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조정한다.
주최측에서 직접 도슨트를 운영할 경우, 참가 갤러리로부터 도슨트를 희망하는 자료를 받아, 운영한다. 하지만 신청 갤러리가 많으면 모든 갤러리를 동선에 포함하기 어려워, 일부 갤러리로부터 컴플레인을 받기도 한다. 주최측은 모든 참가 갤러리에게 공정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므로 이런 불만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전문 도슨트 업체에 외주를 맡겨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보안·경비 업체는 아트페어의 안전을 책임지는 중요한 파트너이다. 입출구 수와 전시장 규모에 따라 컨벤션 규정에 맞춰 경비지도사를 포함한 보안요원들이 배치된다. 이들은 작품과 관람객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철저한 감시와 관리를 수행한다.
한 번은 야간에 전시장 내에서 누수가 발생했는데, 이를 야간 순찰 중이던 보안 팀장이 조기에 발견하여 조치하였다. 당시 해당 위치에 15여억원 상당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만약 초기에 발견하지 못했다면, 주최측, 컨벤션, 그리고 참가 갤러리 모두에게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뻔했다.
보안과 경비가 철저하게 이루어질 때, 관람객과 참가자들은 안심하고 아트페어를 즐길 수 있다.
보험 (행사 보험, 작품 보험)
아트페어에서는 일반적으로 행사 보험과 작품 보험, 두 가지 보험에 가입한다. 이들은 예기치 않은 사고나 손실에 대비하여 아트페어의 리스크를 관리하는데 필요한 안전망을 제공한다.
행사 보험은 행사 규모, 관람객 수, 참가자 수, 행사 기간 등을 고려해 보험료가 책정된다. 컨벤션의 규정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진행해 본 코엑스와 세텍은 행사 보험 가입이 의무 사항이었다. 행사 보험의 보험료는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작품 보험은 아트페어에 출품 작품 수가 너무 많아 주최측에서 작품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따라서 참가 갤러리에게 개별적으로 작품 보험 가입을 권장하는 수준이다. 주최측에서는 직접 관리가 가능한, 주최측이 운영하는 특별전이나 라운지 공간에 설치된 한정적인 작품들만 작품 보험에 들어 혹시 발생할 수도 있는 작품 훼손이나 도난, 분실에 대비한다.
별도로 컨벤션 자체적으로도 안전사고에 대비한 보험에 가입된 경우가 있다.
맺음말
결론적으로, 아트페어는 다양한 파트너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협력의 결과물이다. 각자의 전문성과 노력이 모여야만 비로소 성공적인 아트페어가 탄생할 수 있다. 이러한 협력의 중요성을 모르고, 파트너들을 갑과 을로 대한다면, 좋은 아트페어가 될 수 없다.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의 등장으로 위축될 거라고 예견했던 마이애미의 도메스틱 아트페어였던 는 오히려 지금 더 많은 에디션의 아트페어를 만들고 규모가 커졌다. 아트마이애미, 콘텍스트마이애미, 아쿠아 아트마이애미, 팜비치 모던 컨템포러리, 마이애미 모던 컨템포러리 등 여러 아트마이애미를 운영하는 아트마이애미는 아트바젤만큼 많은 직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2018년 마지막 마이애미 출장 때 물어보니 직원이 6명이라고 해서 놀랐다. 지금도 그때보다 규모가 커졌지만 11명에 불과하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오랜 기간 함께한 전문적인 파트너사들이 지속적으로 협력하기 때문이다. 아트마이애미 본부는 헤드쿼터 역할만 수행하고, 실질적인 운영은 파트너사들이 담당한다.
실정상 많은 직원을 둘 수 없는 국내 아트페어에서 일하며, 그와 같은 구조를 만들기 위해 전문성 있는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한편으로는 한국에서는 독점계약이라는 비판받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럼 그만한 전문성을 갖춘 다른 업체를 제안해달라고 했으나, 마땅한 업체를 제안하지도 못했다.
이제 한국에도 아트페어가 100여개가 생겼다고 하니, 전문성을 갖춘 경쟁력 있는 업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그런 파트너들과 앞으로도 함께 아트페어의 가치를 더욱 높여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