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조 굴렸는데 결과가…직장인들 "이럴 줄은" 멘붕 [일확연금 노후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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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2.3% '쥐꼬리' 퇴직연금
AI에 맡겼더니 50% 찍었다
퇴직연금 5년간 연평균 2.35%
적립금 431조…수익은 예금 수준
87%가 원리금 보장형 상품 투자
AI가 굴리는 로보어드바이저
투자 성향 맞게 포트폴리오 조정
연 수익률 52% 알고리즘 등장
정부, IRP에 일임 서비스 허용
은행·증권·핀테크 경쟁 치열
퇴직연금은 기본적으로 ‘장기 투자’ 상품입니다. 공격적으로 투자해야 평균 수익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선 자산배분 전략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가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상황을 파악하고 유연하게 투자 자산을 조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투자자에게는 로보어드바이저(RA)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RA 일임형 서비스를 이용하면 투자자가 일일이 주식이나 채권을 매매할 필요 없이 전문가 수준의 포트폴리오 관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최근 정부가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RA 일임 서비스를 허용하면서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연금도 AI가 굴린다
20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퇴직연금 적립금은 2016년 말 147조원에서 작년 말 431조7000억원으로 193.7% 늘었습니다. 연평균 16.2% 성장한 셈입니다.적립금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수익률은 저조한 상황입니다. 최근 10년간 퇴직연금 연평균 수익률은 연 2.07%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기금이 은행 예금 같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몰려 있기 때문입니다. 2023년 기준 전체 퇴직연금 적립액 가운데 87.2%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실적 배당형 비중은 12.8%에 그칩니다.
퇴직연금은 기본적으로 20년 이상 적립·운용하는 장기 상품입니다. 매달 납입하는 자금을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 수천만원 이상의 격차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선 위험자산 투자 비중을 키워야 하지만, 노후 대비라는 목적을 고려할 때 주식에 모든 자산을 ‘몰빵’하는 것도 부담입니다. 분산 투자가 정답이지만, 투자자들이 일상생활을 보내면서 퇴직연금까지 신경쓰는 건 쉽지 않습니다.
최근 주목받는 해법이 RA입니다. RA는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투자자 성향에 맞는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생성하고 그에 따라 자산을 운용하는 서비스입니다. RA 서비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AI가 포트폴리오를 추천만 하는 ‘자문형’과 실제 매매까지 대신 하는 ‘일임형’이 있습니다.
일임형 서비스의 가장 큰 강점은 자산배분 전략의 자동화입니다. 투자자가 일일이 상품을 고르고 매매할 필요 없이 전문가 수준의 포트폴리오 관리를 받을 수 있습니다. RA는 수천 개의 글로벌 금융 데이터를 분석해 투자자 성향에 맞는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시장 변화에 따라 자동으로 자산을 리밸런싱(비중 재조정)합니다.
예를 들어 RA 일임 서비스 점유율 1위인 디셈버앤컴퍼니의 ‘핀트’는 △스포츠모드(글로벌 적극 투자) △스마트모드(글로벌 분산 투자) △크루즈모드(국내외 적극 투자) △컴포트모드(국내외 분산 투자) △에코모드(국내 인컴 투자) 등 다섯 가지 투자 전략을 제공합니다. 크루즈모드는 미국지수와 국내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 주로 투자하는 식입니다. 투자자들은 본인에게 맞는 투자 전략을 선택할 수 있고, 개별 종목의 편입금지 지정 등 다양한 옵션을 사전에 지정할 수 있습니다.
RA 일임형 서비스는 일반 액티브 펀드에 비해 수수료가 낮다는 점도 강점입니다. 예를 들어 핀트의 퇴직연금 일임서비스 수수료는 연 0.396~0.588%로 1% 미만입니다.
IRP부터 일임서비스 허용
지금까지 RA 시장은 핀테크 스타트업이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AI 수준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은행이나 증권사 등 금융사도 RA 사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과 미래에셋·한국투자·삼성·NH투자증권 등의 고객들은 각 사 애플리케이션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RA 일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올해부터 정부가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일임형 서비스를 허용하면서 시장이 확 열렸습니다. 기존에는 가입자가 직접 상품을 고르고 매매해야 했지만, 이제 투자 성향만 입력하면 AI 알고리즘이 자산 배분 전략을 제시하고 운용까지 수행하는 겁니다.
가입 한도는 IRP 계좌당 연간 900만원이고 매년 900만원씩 증액됩니다. 미사용 한도는 다음 해로 이월할 수 있습니다.
정부 정책에 힘입어 RA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코스콤에 따르면 자문·일임 RA 운용금액은 2023년 말 1186억원에서 이달 3750억원으로 216% 급증했습니다.
아직 IRP를 제외한 확정기여(DC)형 등 나머지 퇴직연금에 대해선 RA 일임 서비스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금융권에선 “RA 일임형 서비스가 IRP에서 성과를 낸다면 향후 DC형으로 확대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과거 수익률보단 투자성향 중요
가장 중요한 수익률은 어떨까요. RA 회사들은 각 알고리즘 수익률을 코스콤을 통해 공시하고 있습니다. 코스콤에 따르면 테스트베드를 통과해 상용서비스가 가능한 알고리즘은 총 827개입니다. 이 중 NH투자증권의 ‘QV 연금포트폴리오(위험중립형3)’의 최근 1년 수익률은 52.63%로 1위를 기록했습니다.‘콴텍 퀄리티 Focus 국내 주식 1호’ 최근 3년 수익률은 80.46%에 달합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1.36% 하락했습니다.
사람이 운용하는 펀드와 달리 알고리즘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일관된 원칙에 따라 투자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시장 급락이나 급등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RA는 하락장에서 더 빛을 발한다는 게 업계 설명입니다. 코스콤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코스피200지수가 17.2% 하락한 동안 ‘안정추구형 국내주식’ 알고리즘은 -4% 수익률로 선방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과거 수익률보다 개인의 투자성향에 맞는 전략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과거에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해서 미래에도 그럴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RA 업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분산 투자를 통해 연평균 7% 수익을 꾸준히 가져가는 게 이상적”이라며 “본인의 투자 성향에 맞게 전략과 포트폴리오를 달리 가져가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서형교 기자 seogyo@wvnryckg.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