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던 국가 신용등급을 사실상 모두 반납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에 최고 등급을 부여해왔던 무디스마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했다. 뉴욕 증시 정규 거래 마감 이후 나온 이번 소식으로 미 국채금리가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였고, 변동성 지수가 급등하는 등 시장의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현지시간 16일 무디스(Moody's)는 미국의 선순위 무담보 채권 등의 등급을 기존 최고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등급 전망은 기존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변경했다. 이로써 3대 국제 신용평가사(S&P, 피치, 무디스) 모두 미국에 더 이상 최고 신용등급을 부여하지 않게 되었다.

무디스는 지난 10년간 지속된 미국의 국가 부채 증가와 이자 지급 비율 등이 다른 유사 등급 국가들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가 약 1조 9천억 달러에 달하고, 10년 뒤에는 2조 7천억 달러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무디스는 미 연방정부의 공공 부채 비율이 202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98%에서 2035년에는 134%까지 증가하고, 이자 지급액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약 18%에서 약 30%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무디스는 현행 재정 정책들을 고려할 때 2017년 도입된 감세·일자리 법안이 연장될 경우 향후 10년간 연방 재정에 약 4조 달러의 추가 적자를 유발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는 역대 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재정 적자 및 이자 비용 증가 추세를 되돌릴 조치에 합의하지 못한 상황과 맞물려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더하고 있다.

다만, 무디스는 미국의 거대한 경제 규모, 높은 평균 소득, 기축통화인 달러의 지위,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효과적인 통화 정책 등을 감안해 신용등급 하향에도 불구하고 등급 전망은 '안정적'으로 평가했다.

세계 최고 수준이던 미국의 신용등급은 2011년 8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AAA'에서 'AA+'로 처음 하향 조정했다. 이는 1941년 S&P가 미국에 신용등급을 부여하기 시작한 이래 70년 만의 일로, 기축통화인 달러 발행에 기반한 미국의 경제적 위상에 대한 경고로 여겨진다.

다른 신용평가기관인 피치(Fitch)도 2023년 8월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당시 피치는 "향후 3년간 예상되는 미국의 재정 악화와 국가채무 부담 증가, 거버넌스의 악화 등을 반영했다"고 밝히며 미국 재정 적자와 정치 시스템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무디스의 발표 직후 금융 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날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장중 1bp(1bp=0.01%포인트)가량 하락하다 무디스의 발표가 공개된 직후 3bp 뛰어 4.48% 선까지 올라왔다. 30년 만기 미 국채금리도 4.96%대까지 상승하는 등 채권 시장에서 변동성이 나타났다.

● 뉴욕증시, 경제 지표 부진에도 상승세…노보노디스크 CEO 교체 충격



미국 뉴욕증시는 이날 발표된 일부 경제 지표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주간 단위로 이어진 상승세를 지켜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S&P500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0.7% 상승한 5,958.38에, 나스닥 종합지수는 약 0.5% 오른 19,211.10으로 마감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역시 0.78% 상승한 42,654.74로 장을 마치며, 연초 이후의 하락분을 모두 만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주 증시 상승은 미국과 중국이 90일간의 한시적 관세 유예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영향으로 주간 기준 S&P500 지수는 5.3%, 나스닥 지수는 7.2% 급등했으며, 다우 지수도 3.4% 상승 마감했다.

시장이 활기를 되찾으면서 미국 개인 투자자들의 심리도 다소 개선됐다. 미 개인투자자협회(AAII)가 집계한 향후 6개월 시장 전망에 따르면, 투자자 중 35.9%가 낙관적인 전망을, 44.4%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비관론이 여전히 우세하지만, 낙관적 응답 비율은 올해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소비자 심리는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미시간대학교가 발표한 5월 소비자심리지수 잠정치는 50.8로, 전월 확정치인 52.2에서 추가 하락했다. 또한, 향후 1년 단기 기대 인플레이션은 7.3%로 급등해 1981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5년 이상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도 연 4.6%로 3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러한 미·중 간의 긴장 완화 분위기 속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교역 정책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시사했다. 중동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에어포스원에서 열린 약식 기자회견에서 "각국에 새로운 관세율을 담은 서한을 보낼 것"이라고 언급하며, 행정명령을 통한 관세 정책 적용에 속도를 낼 수 있음을 내비쳤다.

뉴욕 증시의 주요 종목별 움직임을 보면, 비만 치료제 신약 임상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노보 노디스크는 최고경영자(CEO) 전격 교체 소식까지 더해지며 2.67% 하락했다. 반면, 경구용 비만 치료제 등에서 긍정적인 임상 데이터를 발표한 경쟁사 일라이 릴리는 3.29% 상승하며 대조를 이뤘다.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규제 위협이 과장되었다는 일부 월가 분석과 최근 발생한 랜섬웨어 공격 이후 경영진의 신속한 대응에 힘입어 9% 반등했다. 코인베이스의 공동창업자인 브라이언 암스트롱은 전날 소셜미디어 영상을 통해 해커들이 요구한 2천만 달러를 용의자 검거를 위한 포상금으로 내걸고, 피해 고객 보상 및 시스템 개편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실적 악화와 CEO 사임 등으로 연초 대비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던 유나이티드헬스 그룹도 주요 임원들의 자사주 매입 소식에 6.4% 반등했다. 이밖에 헬스케어, 보험, 금융, 필수소비재, 통신 관련주들이 이날 전반적인 상승세를 주도했다.


김종학기자 jhkim@wowtv.co.kr